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 2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에 이어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를 더 이어 공유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미술로 기억할 만한 것을 양정무 교수는 다음 6가지를 꼽는데, 어제는 와르카 병, 우르의 군기 그리고 나람신 전승비 이야기를 했다. 오늘 아침은 나머지 세 개, '함무라비 법비', '라마수 조각상'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만국의 문' 이야기를 공유한다.
수메르인들의 도시 문명은 우르라는 거대 도시를 정점으로 점점 쇠퇴하고, 결국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도권을 아카드인들에게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최초로 통일했던 아카드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으며, 혼란한 틈을 타 바빌로니아, 라가시 등 도시국가들이 영역을 확장 시켜 나갔다. 이들 각각의 도시국가에서 만들어진 미술 작품들은 다양한 통치 방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고대 바빌로이아의 미술로는 '함무라비 법비'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함무라비 법비는 기원전 175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법전의 내용과 함께 신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 받은 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법비문의 아랫부분에는 282개의 법 조항이, 윗 부분에는 함무라비 왕과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높이가 2미터 25cm이다. 법 조항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1) 같은 죄를 지어도 신분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게 했다. (2) 신분이 같은 사람들끼리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 해결하는 방식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처럼 당한 일을 그대로 갚아준다는 식이다. 오늘날 오히려 이게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전무좌, 무전유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3) 신명 재판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인간이 유죄 여부를 알아낼 수 없는 어려운 사건의 재판을 신의 뜻에 맡겨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해지는 흑마술을 부렸다는 혐의를 받으면 용의자를 물에 빠뜨리고 죽으면 유죄, 살아나오면 무죄라고 믿었다.
법비 상부의 조각 오른 쪽에는 '샤마쉬'라고 불리는 태양신이 있고, 그 앞에서 법을 건네 받고 있는 이가 함무라비 왕이다. 왕의 둥근 모자는 사르곤 1세가 쓰고 있던 것과 같고, 신은 소라 껍질을 말아 놓은 것 같은 독특함 모자를 쓰고 있다. 신이 넘겨주고 있는 물건은 지휘봉과 반지이다. 둘 다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어떤 사람은 반지가 아니라 줄자라는 주장도 있다.
재미있는 건 함무라비 왕과 샤마쉬 신의 크기이다. 키가 비슷해 보이지만 눈높이를 비교해 보면, 오히려 함무라비가 약간 크다. 신은 앉아 있으니 실제로는 신이 훨씬 더 크다. 신의 권위를 드러내면서도 그 앞에 선 왕이 너무 작아 보이지 않도록 배려했던 조각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살아 있는 권력이 무서운 것이다. 신과 왕의 권위를 동시에 작품 안에 담으려고 했던 노력이 느껴진다.
고대 미술에서는 법이나 정의가 태양신과 관계 있는 것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태양은 언제나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고, 고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규칙적인 천체이다. 고대인들은 이 규칙성을 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태양은 밝은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기 때문에 정의의 신으로 여겨진다. 정의로운 태양신이 함무라비에게 지휘봉과 반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가 제멋대로 정한 게 아니라 신으로부터 받아 세운 체계라는 걸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신의 권위를 빌려 통치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미술품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복잡한 정치 수난사와, 위기를 타파하고 권력을 확립하려 한 통치자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대가 흐르면서, 인간들은 신을 경배의 대상에서 자신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존재로 변화 시킨다. 신을 형상화하는 방식도 왕권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 와르카 병에 새겨졌던 이난나 여신처럼 이전까지는 예배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신이 이 시기에는 왕의 권위를 승인하는 존재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의 선전물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화된다.
말이 길어져, 내일 하루 더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미술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낳은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말이다. 미술을 만나면 세상은 이야기가 된다. 하루 살기에도 바쁜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지만., "미술 속에 담긴 인류의 지혜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내일의 삶은 다소나마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양교수가 자신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금씩 나만의 시간이 나는 12월이다. 올해는 다시 U턴해서 59살로 되돌아가기 위해,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하 듯이, '콩대궁"을 만지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모처럼 아무 일정이 없는 불(火)요일이기 때문에, '불질'이나 할 생각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부질없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불질을 안 했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쓸모 없다'는 말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 불요일은 주님을 모시고 불질을 해야 영혼이 단단해 진다. "콩대궁"만 만지지 말고. '불질' 생각 있는 분들은 다 모여라. <뱅샾62>로.
소설가 백영옥의 칼럼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연암 박지원은 10대 시절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여러 책과 친구였다. 박제가, 이덕무 등 친구들은 탑골 공원에 모여 천문과 음악 예술을 논했다. 한량이었던 연암이 고립되지 않은 건 모두 동무면서 선생이었던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 컬럼에서 소설가는『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의 저자 고미숙 선생의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 고 선생은 자본주의가 너무 '사랑'을 강조해서 '우정'이 폄하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단다. "사랑의 기본은 '독점과 배타적 소유'다. 그래서 집착을 낳기 쉽고 화폐와 긴밀히 연결된다. 이런 관계에만 몰입하면 존재가 작아진다. 또 가족 관계는 애증과 부채감이 기본이라 수평적 대화가 어렵다. 사랑과 가족을 초월해 우리를 가장 성장시키는 건 '도반(道伴)' 즉 우정이라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백영옥)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늘 하는 나의 주장이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도 모두 다르게 살아온 경력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의 생각이 옳은 것은 없다. 그러니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 주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거나 주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를 매우 반갑게 만나고 그와 음모를 꾸민다. 그 음모를 에피쿠로스는 우정(友情)이라 했다. 이 음모의 시작은 서로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하며, 뭉클한 위로를 받을 때가 공감하는 순간이다.
12월 저녁의 편지/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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