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발은 인간 존재 자체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2. 2. 15:29

8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이야기 하나

잘 알려진 마하트마 간디의 ‘신발 한 짝’ 이야기를 기억한다.

열차가 플랫폼을 막 출발했을 때 일이다. 열차의 승강대를 딛고 올라서던 간디는 실수로 그만 한쪽 신발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열차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으므로 그 신발을 주울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만 포기하고 차내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간디는 얼른 한쪽 신발을 마저 벗어 들더니 금방 떨어뜨렸던 신발을 향해 세게 던지는 것이었다. 친구가 의아해서 그 까닭을 물었다. 간디는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쪽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을게 아닌가!"

신발은 인간 존재 자체이다. 신발을 신고 살아야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 온 삶의 흔적을 한 장의 종이에다 기록하고 이것을 이력서(履歷書)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력서라는 말의 한문을 풀어보면, ‘신발(履)’를 끌고 온 역사(歷)의 기록(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로 '고무신 거꾸로 신기'라는 말은 사랑하는 상대가 변심한 경우에 사용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운 사람의 신발 끄는 소리(예리성 曳履聲)가 들리면, 버선발로 뛰어나간다.” ‘신발을 신을 틈이 없이 달려 나가야만, 아니 자신의 온 존재를 벗어 놓은 채 달려 나가야만 완전하게 그리운 임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은 강가에 신발을 벗어 놓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든다. 왜 그럴까? 신발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신발의 고무 밑창 하나가 우리와 대지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대지는 인간이 장차 돌아가야 할 곳이다. 더 이상 신을 신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외짝 신 사나이, 모노샌달로스가 영웅이 된다. 나도 신발 한 쪽을 잃었다. 그 신발을 찾아야 '온 존재'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혼술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