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적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랑과 성숙한 지혜가 가득 찬 존재가 된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앞서 정리했던 니체와 프롬, 두 철학자의 공통점은 종교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인간을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리스도교의 권위주의적 요소를 이렇게 세 가지로 문제 삼는다. ①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천국에 간다는 식의 교리 ② 믿음을 고백하며 교회를 빠짐없이 다녀야 보다 성숙해진 이성이나 보다 큰 사랑을 갖게 된다고 본다. ③ 다른 종교들은 이단이라고 배격하는 독선과 아무것도 회의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는 무비판적인 맹신만을 키운다.
그리스도교의 인본주의적 요소는 하느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는 하느님이다. 이러한 사랑의 하느님에 가까이 가는 길은 ‘예수가 하느님이다’라고 끊임없이 고백하고 갖가지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지혜로 사람들과 뭇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인본주의적 종교를 보여주는 구절은 요한 1서 4장 12-16절이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제도화된 권위적인 종교를 믿으면 자신들 만이 절대적 진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인간이 되며, 다른 종교나 사상은 모두 허위 내지 이단이라고 배격하는 배타적이고 편협한 인간이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이기적인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기복적인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적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랑과 성숙한 지혜가 가득 찬 존재가 된다.
반면, 인본주의적 종교에서 신이란 인간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덕성인 사랑과 자비 그리고 지혜를 완전히 구현한 존재를 상징한다. 이때의 지혜는 현실에서 영악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지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에 자신을 바칠 줄 아는 지혜이다. 인본주의적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과제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사랑이나 자비와 같은 이성적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찾도록 돕는 깊은 지혜를 갖게 된다.
니체와 프롬은 인간의 잠재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느냐 기여하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종교를 구분하였다. 니체는 모든 사람들과 집단들이 서로 힘을 겨루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나 집단을 압도하려는 호승심(好勝心)과 용기 그리고 자신에 대한 긍지와 그때마다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민활한 지혜를 계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위로 향한다. 나무들처럼, 이 지상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지상의 삶을 긍정하면서 초인의 고귀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생은 근본적으로 정복과 착취를 자신의 본질로 갖는다.”(니체) 이러한 현실에 니체가 내세우는 가치는“긍지, 거리를 두는 파토스, 큰 책임, 원기 발랄함, 멋진 야수성, 호전적이고 정복적인 본능, 열정과 복수와 책략과 분노와 관능적 쾌락과 모험과 인식의 신격화"이다. 그리스와 로마 종교가 그렇다. 그리스와 로마 신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힘이나 인간의 정염들을 신성화 한다. 니체는 거세된 신이자 여성화된 신 대신 ‘초인(超人)’의 개념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겪을 때 인격신에 의존하기보다는 강한 정신력과 생명력을 지닌 초인이 되어 어떠한 고난과 고통도 흔연히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긍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超人)은 강한 긍지와 용기 그리고 민활한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도전적이지만, 패자에 대해서는 관용과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자이다. 덧없이 생성 소멸하는 이 세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생명력이 쇠퇴한 자들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이 세계를 가상으로 보고 다른 세계를 참된 것으로 보면서 이 세상에 복수한다. 예컨대, 플라톤 이래의 서양의 전통적인 철학(서양의 형이상학)들이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이다.
통찰력을 주는 긴 이야기였다.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그전에 할 일은 믿음과 진실을 다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믿음이 지배하면, 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가야 한다. "물방울"처럼.
물방울/이성선
물 속을 걸어 들어 간
산 하나
물방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 하나
산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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