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은 "산상수훈의 팔 복"중 제 7복 이야기를 공유하고 행복의 비밀을 해부하려 한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여기서 "평화(平和)"는 무엇이고, "하느님의 자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맹자의 4단(端)에 따르면, 겨울에 해당하는 지(智), 지혜의 이야기라고 나는 본다.
배철현 선생은 "겨울은 우리가 지난 일년 동안 추구한 일들을 반추하고 조용히 평가하는 정적(靜寂)과 침묵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내 친구 김래호는 겨울을 이렇게 말한다. "봄은 ‘보기’ 때문에 봄이고, 여름은 ‘열매’의 고어이고, 가을은 갈무리하는 ‘갈’이고, 겨울은 ‘결’이 되는데, 나무나 돌, 사람 모두 세월의 흔적과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켜 같은 ‘결’이 온당하다. 나뭇결이나 살결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월의 상처와 흔적, 즉 '결'이 지혜로 쌓이고, 그게 평화를 이룬다고 나는 본다.
고 차동엽 신부님에 따르면, 평화는 히브리어로 "샬롬(Shalom)"이다. 그리스어로는 "에이레네(Eirene)"로 죄나 허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박해가 없을 때, 냉장고가 가득 찼을 때, 생활에 골칫거리가 없을 때 평화롭다고 느낀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화는 다르다. 박해를 받을 때도 평화롭고, 냉장고가 비었을 때도 평화롭고, 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도 평화롭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은 다음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① 우리가 질 수 없는 짐은 지우지 않겠다. ②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지 않겠다 ③ 우리에게 결코 불가능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짐과, 고통과 희생을 피하지 말고,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면 무섭거나 두려울 리 없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이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평화이다. 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다.
이때 쓰인 '안식'이 그리스어로 '에이레네(평화)'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참 평화는 풍랑 속에서, 전쟁터에서, 역경의 반복판에서도 누리는 평화"라고 차 신부님은 설명하셨다. 그럼 이런 평화를 어떻게 해야 누릴 수 있나? 신부님은 "먼저 나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내 안의 상처, 내 안의 허물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말하는 거다. '사랑해!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면 화해가 이뤄진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 또 자연과 평화를 이루는 거다"고 이야기 하셨다.
배철현 선생에 의하면, 중동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다음과 같은 인사를 한다고 한다. 아랍인들은 ‘살람 알레이쿰(salām aleykum)이라고 말하고 이스라엘사람들은 샬롬(šalôm)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 두 단어는 셈족인들의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비밀을 품고 있다. 아랍어 살람(salām)과 히브리어 샬롬(šalôm)의 원래 의미는 바빌로니아 경제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20세기에 바빌로니아 경제문서에 이 ‘샬람’šalām이라는 아카드어 단어가 등장한다. ‘샬람’은 어떤 개인이 부채를 상환하여 자유로운 상태를 지칭한다. ‘샬롬’ 혹은 ‘살람’이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알고, 그것을 완수하려고 집중할 때, 나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다. 그것은 ‘침착(沈着)’과 ‘평안(平安)’이다."(배철현)
불교는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한다. 진여(眞如)나 여여(如如)의 경지를 강조하며, 불교는 극단적으로 두 가지 마음에 대해서 설명한다. ‘집착하는 마음'과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 나는 실제 이 극단적인 두 마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집착하는 마음'은 나의 삶에 불만족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면,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은 나의 삶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준다.
가시에 찔리면 아프다. 심한 경우엔 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상처 난 자리를 얼른 닫아 버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그 뜨끔했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무는 것도 아니고, 아찔했던 기억이 영영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시에 찔렸던 자리에 자꾸 마음이 가고 눈길이 머물러 비록 한동안일지라도 상처가 있는 곳이 가장 아픈 곳이 되며 그래서 마침내 내가 사랑하는 곳이 된다. 가슴에 찔린 상처도 그렇다.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아니 사랑하면,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산상수훈 제 7복이 마음에 와 닿는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성숙함에 대하여/박빈손
연구원 화학 박사도
와인의 숙성에 대해 잘 설명하지 못한다.
생화학이라면서.
인문운동가도
인간의 성숙함에 대해 잘 설명하지 못한다.
나이에 상관 없이 사람마다 성숙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명하라면,
사는 동안 쓴맛, 단맛 다 봤기 때문에 느껴지는 성숙함이 아니라,
힘찬 기운과 여유가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가진 사람일 거다.
그런 사람은 스치는 게 많아 가슴에 자국이 많은 사람이다.
그게 진짜 성숙함이다.
가슴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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