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은 "산상수훈 팔 복" 중 제 6복 이야기를 공유하고 행복의 비밀을 해부하려 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서 '깨끗함'의 그리스어가 '카타로스(Katharos)'이다. 이 말의 뜻은 '잡티가 없는 순수함'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타르시스(Katarsis)'의 어원과 같다. 이 말은 '씻겨 냄' 뒤에 오는 것이다. 예컨대, 눈물이란 한번 울고 나면 상황을 잊게 하는 모르핀 같은 것이다. 울고 나면 시원해지는 그 감정을 '카타르시스'라는 그리스어로 명명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카타르시스는 정화(淨化)를 뜻하는 말로 그의 『시학』에 나오는 말이다. 비극을 보면 흘리는 눈물이 마음을 순화해 평정심을 가지게 한다는 뜻이다.
'카타로스'도 마찬가지이다. 눈물로 씻어내고, 다시 말하면 화개로 씻어내는 거다. 차동엽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며 자신을 씻는다. 그렇게 씻어낸 뒤 마음이 깨끗해 지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바쁘다 하더라도 "씻어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신부님은 이탈리아의 영성가인 카를로 카레토의 말을 인용하셨다. "단신이 만약 사막에 갈 수 없다면, 당신의 생활 가운데 사막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서 침묵과 기도를 하라. 그렇게 영혼을 재건하기 위한 고독을 찾아야 한다. 그게 바로 영성 생활이다." 그래야 '깨끗한 사람"이 된다.
그럼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라는 말에서 정말 하느님을 보는 것인가?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신다. 이 말은 하느님과 통(通)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3차원적인 언어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꿈에서 하느님을 봤다' 또는 '환시를 통해 하느님을 봤다.'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을 만나는 가장 낮은 수준이고, 가장 위험한 수준이다. 형상이 없는 하느님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통(通)함'의 의미가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통'자를 좋아한다. 인생을 살면서 다가오는 위기들은 결국 자신이 고민하고, 자신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3개의 '통'을 가지고. 공자의 '궁즉통(窮則通)' - 힘든 일이 닥치면 한 판 붙는다. 노자의 '허즉통(虛卽通)' - 자신을 비운다. 손자의 '변즉통(變卽通)' - 시대에 맞게 변한다.
▪ 공자의 '궁즉통': 궁하면 통한다. 역경이 닥치면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군자고궁(君子固窮)'(『논어』): 군자는 어렵고 궁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궁즉통은 원래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에서 나온 말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세상은 변한다. 자연은 음양이 교차하고, 춘하추동이 순환한다. 『주역』의 변화 철학으로 '궁즉통'의 4단계가 '궁, 변, 통, 구'이다. 그리고 '극즉반(極卽反)'이란 말도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간다.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 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도덕경』):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인생무상, 공수래 공수거이니 모든 것을 비우고 낮추며 섬기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루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고 위대하다. 이를 '허즉통'이라고 한다.
▪ 손자의 '변즉통': 손자는 만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 이기고,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긴다.’를 이상으로 보았다. 이것이 『손자병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변즉통'으로 요약된다. 때와 장소를 알고, 흐름의 속도를 맞춰 나갈 수 있어야 된다. 상황에 따라 변화해 나가야 한다.
다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 제 6복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통한다는 것이다. 그럼 통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차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 안에 거(居)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서로에게 거할 때 통하는 거다. 그때 안테나의 주파수가 맞는 거다. 마음이 깨끗할수록 안테나의 감도도 좋아진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잡음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수신하는 거다. 그게 통함이다."
『장자』의 <재물론>에 이런 말이 있다.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 不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방생방사 방사방생 방가방 불가 인시인비 인비인시 시이성인불유 이조지어천 역인시야) 이 말을 한국 말로 하면 이렇다.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가능함이 있어 가능하지 않음이 있다. 옳음이 있어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어 옳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같은 상대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하늘의 이법에 비추어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옳음에 의지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함(인시因是)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 반대가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이다. 마음의 때이다. 깨끗하지 못한 마음의 잡음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그렇게 당신과 나는, 겹쳐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림이 그려진다. 다시 시작하는 월요일이기도 하지만. 이젠 내일부터 나이를 뒤로 먹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춘하추동'을 한 바퀴 다 돌았으니까. 내년 이 때 내 나이는 59살로 다시 내려갈 것이다.
소사 가는 길, 잠시/신용목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터이니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겹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 바둑돌이 놓여지고 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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