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희망은 인간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현상 유지에서 혁신으로 인도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1. 13. 07:22
5년 전 오늘 글입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 부통령에 당선된 카멀라 해리스 이야기를 한다. 오늘 아침에도 경향신문의 김민아 논설위원의 칼럼을 접했다. 그녀에 의하면, 퓰리처상 수상자인 워싱턴포스트의 로빈 깁핸은 해리스의 당선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최초. 최초. 최초(First. First. First).” 최초란 표현을 세 번 쓴 건 해리스가 여성·흑인·아시아(인도)계라는 3중의 장벽을 한꺼번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해리스의 성취가 값진 건 단순히 ‘최초’여서만이 아니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을 딛고 얻어낸 승리여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리스를 “괴물”이라 불렀다. “화난” “심술궂은” “공격적인” 등의 표현도 사용했다. ‘앵그리 블랙 우먼(논쟁적이고 호전적인 흑인 여성)’이라는 인종적 고정 관념을 끌어들인 것이다. 때로 “비호감”이란 용어도 동원했다. 해리스 입장에선 ‘줄타기 곡예’ 상황이었다. 이른바 ‘남성적’ 행동은 지도자처럼 보이게 하지만 비호감도를 높이고, ‘여성적’ 행동은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지도자다운 이미지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이중잣대를 해리스는 뚝심으로 돌파했다.
다른 시각, 즉 소수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한다고 모든 여성, 특히 빈곤층이나 노동계층 여성의 삶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라는 반론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해리스의 부통령 당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할지라도, 흑인 소녀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투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본다. ‘유색인 여성도 최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인식을 심는 일만으로도 그의 의미는 작지 않을 것이다.
그 가능성이 희망이다. 희망은 한 줄기 끈이다. 연약하지만 나를 과거라는 괴물에서 탈출하여 미래라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등불이다. 희망은 인간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현상 유지에서 혁신으로 인도한다. 희망이란 한자(希望)의 㠻(희)자는 ‘드믈다, 씨줄과 날줄 사이가 듬성듬성 성기다'란 의미다. 옷감(巾)을 서로 교차한(爻)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다. 望(망)자도 높은 곳에서 훨씬 먼 곳을 바라보는 행위를 표현한다. 보름달은 절망과 체념의 상징이다. 이제 줄어들어 반달로 변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초승달이 된다는 신호다. 초승달은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다. 이제 불어나 시작하여 반달을 거쳐 보름달이 된다는 신호다. 희망은 보름달이나 초승달에 연연해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의연이다. 희망은 오늘 하루가 더 나은 자신을 위한 소중한 발걸음이란 믿음이다.
나는 늘 "희망으로 가득한 가능성"을 꿈꾸며 산다. "가장 마지막에 죽는 것이 희망이다"라는 독일어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을 모실 때마다, 이런 건배사를 한다. 내가 '스페로(spero)'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스페라(spera)'라 외치게 한 후 마신다. 그 뜻은 '나는 희망한다.' 그러니 "너도 희망 하라'이다. 이 말은 '나는 숨 쉬는 동안 희망 한다'는 라틴어 'Dum spiro, spero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라틴어 한 구절에 'Dum vita est, spes est'가 있다. 이 말은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이다.
김민아 경향신문 논설 위원의 염려처럼, 해리스가 ‘예외적 1인’으로 소모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쟁자이자 동반자가 생기기를 기대한다. 나는 미셸 오바마를 떠올린다. 둘 다 1964년생이고, 흑인 여성이며 유능한 법률가이다. 흥미로운 것은 1964년은 인종·피부색·종교·국적·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이 통과된 해다. 두 사람은 민권법 제정 이후 보다 평등해진 미국을 상징하는 세대이다.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을 때 미셸이 전한 축하메시지도 해리스의 승리연설과 닮아 있다. “소녀들은 자신과 닮은 누군가가 나라를 이끌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다. 해리스가 최초가 되겠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간들의 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하늘이 더 맑다. 대기 오염이 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픔 뒤에 올 가을은 나뭇잎들의 단풍이 더 뚜렷하고 아름답다. 그런 가을이 깊어진다. 아니 벌써 떠날 준비를 한다. 벌써 춥다는 말이 나온다. 만물의 일 년 생성(生成)은 생겨나고, 자라고, 거두어, 깊이 들어가는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원리에 따른다. 이를 예쁘게 표현하면, "쥐리락, 펴리락"이다. 봄에 만물이 새싹을 잘 틔우고, 건강하게 생겨나려면, 그 전년 가을부터 열매를 잘 거두어 깊이 수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장(收藏)이 잘 되어야 생장(生長)이 좋고, 생장이 좋으면 수장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먼저 쥐고 펴야 한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호흡을 잘 쥐고 장악해야, 소리가 잘 펼쳐진다. 판소리 명창 배일동 선생의 페북에서 만난 이야기이다. 올해 지금의 열매가 내 년 봄의 씨앗이 된다. 그래 만물은 저리도 서둘러 양분을 알뜰살뜰 쥐어서 겨울을 향해서 깊이 숨어들어간다. 나도 이젠 차분하게 수장(收藏)을 준비하리라.
그래 오늘 아침은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를 공유한다. 그리고 지난 주에 만난 좋은 기도를 아침에 한다. "행운을 빌기보다는 감사해 하며 살게 해주세요. 대박을 원하기보다 자족, 가진 것에 만족해 하며 살게 해주세요. 기적보다는 일상에 더 치중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배철현 선생의 멋진 정의에 의하면, 기도는 자신이 욕망을 신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경청하는 수고이다. 사진 '수장'에 몰두하고 있는 연(蓮)을 한밭 수목원에서 찍은 것이다.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혜민 스님이 말씀하신, 행복의 조건으로 "내 몸을 사랑하라"를 실천하고 있다. 스님의 제안 따라, 오른 손을 심장이 있는 곳에 올려 두고 토닥토닥 이면서, '이 몸을 함부로 썼는데 함께 해 줘 고맙다"고 말하며, 나는 들숨과 날숨을 잘 고르며 지내려 한다. 배철현 교수처럼, 나는 들숨을 '새로운 생각으로 오늘을 시작하겠다는 결심"과 공기가 내 코를 통해 매 몸 안으로 들어와 오장육부를 살아가게 만들어 줌에 감사하며 깊게 들어 마실 생각이다. 그리고 나의 "구태의연한 잡념을 제거"하려는 마음으로 날숨으로 다 뱉아낼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한 순간도 버리지 않는 들숨과 날숨을 느끼며 고마워 하기를 잊지 않을 생각이다.
사람의 목숨을 지탱하는 필수 적인 것은 입을 통해 몸 내부로 섭취하는 음식, 먹거리와 마실 거리보다 삼장박동과 호흡이다. 후자가 더 중요한 이유는 내 몸 자체의 내부 활동을 하게 하는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배교수의 글을 보면, "심장은 하루에 만 번 정도 박동한다"고 한다. 그러나 "심장이 1분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인간은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하루 23,000(2만 3천)번 대기 중에 있는 공기를 입과 코를 통해 호흡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순을 최대한 3분 정도 참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상으로 숨을 쉬지 못하면 바로 죽음이다'라 한다. 반면 우리는 최대한 30일 정도 금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먹고 마시는 행위보다 심장 박동과 호흡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먼 거리로 차를 타고 가 즐기지만, 정작 매 순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숨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숨은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보전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활동이다.
어제는 "마음이 가면, 기운이 모이고, 기운이 가는 곳으로 혈이 따라 간다"고 말했다. 어제는 마음이 먼저라고 했는데, 딱 그런 것 같지 않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호흡과 육체 훈련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서로 유기적이기 때문이다. 배철현 교수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호흡과 육체의 훈련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고양의 첫 관문이다. 호흡은 잠잘 때, 책을 읽을 때, 산보할 때와 같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작동한다. 그러나 분노하거나 두려운 상황에 처할 때,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감정이며 이성적인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현대과학은 느리고 깊은 호흡 습관은 혈압과 삼장 박동수를 줄이고 생활에 활력을 준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