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저녁 거리에서 생을 만나다/이기철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1. 10. 22:02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최근에 나는 페이스북의 포스팅으로  배철현 선생의  <매일묵상>을 읽으며 내 영혼을 살찌운다. 나만의 시간이 나면, 그의 글을 읽으며, 흩어져 있던 내 생각을 구슬 꾀 듯이 엮는다. 그가 최근에 낸 책 <정적>을 읽으며, 정신의 근육을 더 키운다.

배철현은 자신이 '위대한 개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완성시키려면 다음의 4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심연-수련-정적-승화". 이 4단게를 거치면,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절실한 인물인 '위대한 개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1단계: 심연. 심연(深淵)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연못이란 말이지만, 여기서는 진실한 자아를 만나기 위해 들어가야 할 마음의 연못이다. 그 연못에 들어가는 것을 그는 '고독(孤獨)이라 한다. 고독은 자신을 위한 최고 사치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고독으로 나아가는 심연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배하려는 누더기, 예를 들면 진부한 습관에 안주하려는 과거의 나를 직시하고 응시하는 이 시간과 공간이 바로 심연이다. 자주 이 심연에서 나를 향한 혹독한 검열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타인과의 경쟁에 휩쓸려, 물밀 듯이 닥쳐오는 일상에 매몰되고 만다.

2단계: 수련. 수련(修練)은 미래의 나를 그리며 오늘의 나를 변화시키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무엇을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불필요한 생각과 말, 행동 등 오늘 하루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인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이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향해 매일 조금씩 나아간다.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나의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작업을 한다. 그를 통해 서서히 어제와 다른 나만의 모습이 드러난다. 수련의 완성은 목표점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로운 지점을 정해 묵묵히 인내하며 걸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련은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이다. 수련은 나의 훌륭한 스승이다. 그래서 '위대한 개인'이 되고, 그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3단계: 정적. 정적(靜寂)은 수련하는 자신을 온전히 나로 숙성 시키는 조용한 기적이 일어는 것이다. 와인으로 말하면, 숙성 단계이다. 정중동(靜中動)이 일어난다. 정적은 고요한 호수와 같은 상태로, 잡념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잠(潛潛)하게 만드는 정중동이다. 마음의 귀로, 머리가 아닌 가슴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정적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이 '경청(傾聽)이다.

4단계: 승화.  승화(昇華)는 과거의 나가 아닌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시간이다. 승화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천지 개벽하는 장소인 고치 안에서 일어나는 변신이다. 승화는 고유한 생각과 말이 깊은 성찰로부터 나오는 삶의 방식이다. 승화는 자신의 간절함이 원하는 바를 거침 없이, 자유롭게 행할 때 자신의 삶에 슬며시 일어날 것이다.

어제 저녁은 지인들과 이강산 시인의 휴먼 다큐 흑백 사진전 <名匠(명장)>(Gallery Photo Class, 동구 계족로 346) 오픈식에 다녀왔다. 프랑스어로는 그런 행사를 베르니사쥐(vernissage)라고 한다. 이 말을 한국어로 고치면, '왁스 또는 니스 칠하기'이다. 그래, 우린 자리를 빛 내주기 위해 갔는데, 나는 잊고 지냈던 많은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저녁 거리에서 생을 만"났다.

저녁 거리에서 생을 만나다/이기철

문 닫는 상점들의 저녁 거리에서 남은 하루를 만난다
춥지 않으려고 나무들은 어둠을 끌어다 제 발등을 덮고
불만 없는 개들은 제 털이 어둠 속에 쉬이 따뜻해지리라는 것을 안다
난폭한 철근들이 잠드는 일은 나를 두렵게 한다
철든 나무들이 어두워진 도시를 달래고
팔려가지 않은 시금치와 조잘대던 완구들이 침묵한다
저 첨탑들은 얼마나 우둔한가
어리석게도 우리는 거기서 생의 열망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쉽게 지워지는 종이의 약속
거기서 우리는 생이 꽃피리라 믿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휴식의 빵을 뜯고
어린 옷가게들은 왜 도시가 어두워지는지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 한다
모든 식사들은 활발하고
부엌과 식당에는 늙은 식욕이 혼자 않아 있다
비탄 한 꾸러미씩 사 들고 가는 사람들
사무원들이 두들기던 자판의 하루가 쉬이 저물고
지나온 습관은 닳은 신발을 맹목이게 한다
어둠 속에 생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별을 쳐다보는
나와 함께 이 도시를 떠밀려 가는 사람들
그들의 내일이 환히 꽃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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