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존재가 처한 상황 속에서 태도를 결정할 자유,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1. 5. 12:37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난 달부터 말레네 뤼달의 『덴마크 사람들처럼』그리고 『우리도 행복해 질 수 있을까』를 다 읽었다. 그래 오늘 아침에도, 행복 담론의 결론을 정리해 공유한다. 어제에 이어 두번째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인생의 사건 앞에서 자유롭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의 고통 속에서 살아 남아 이런 말을 했다.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지만 단 한가지는 빼앗아 갈 수 없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할 자유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내 유일한 쾌락의 원천, 즉 매일 배급되는 빵 한 조각에 죄수들이 보인 태도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 빵 한 조각을 한 번에 다 먹고 큰 만족을 추구했다.
▪ 빵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하루에 여러 번 조금씩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 빵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먹고 마지막 한 조각은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려고 간직해 뒀다.

프랭클은 마지막 태도를 취한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가장 평온했으며 가장 덜 불안해했다고 기록한다.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111세의 알리스 헤르츠좀머가 들려주는 인생의 지혜는 현재에서 최선의 것을 구하고 감사하라는 것이었다. (헤럴드 경제, 2103. 2. 22) "나는 여전히 인생이 고마워요." "나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처지가 나빠도 우리에겐 삶에 대한 태도를, 심지어 기쁨을 발견하고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존재가 처한 상황 속에서 태도를 결정할 자유,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살면서 겪는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능력, 존재에 더 높은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말한다. 프랭클이 수용소 체험을 기록한 책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인간의 의미 추구(Man's search for meaning)』이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살면서, 아주 야만적인 현장에서도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이 가장 잘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미는 어떤 계획이나 자신의 존재를 넘어설 만큼 깊은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존재적 허무가 자리할 위험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 허무는 바로 쾌락 추구로 채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세상의 유한함에 대한, 민감하지만 건전한 인식과 삶에 대한 겸손함도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대자연에 나가보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에서는 겸허해지기 어렵다. 도시는 사람이 만들고 통제하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 이전에 얼마나 큰 생명의 힘이 있었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넬슨 만데라는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말했다. "(27년동안 갇혀 있었던) 감옥에 다녀온 뒤로는 원할 때 산책할 수 있는 일, 가게에 가는 일, 신문을 사는 일, 말하거나 침묵할 수 있는 일 등 어떤 작은 일도 고맙게 생각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단순한 일이었다. 인생의 작은 기쁨에 경탄하는 일이 행복의 토대이다. 신선한 야채를 먹는 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산책하는 일 등이다. 행복한 삶은 본질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고 기쁨과 사랑의 순간을 한껏 즐기길 때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과 관계 그리고 충실하고 풍요롭고 애정 어린 환경을 가꾸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는 우리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가족, 친구, 공동체에 사회적으로 더 강하게 연결될수록 더 행복하다.

정리하면, 행복의 토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 현실적 기대와 끊임없이 거듭 감탄하는 능력을 통해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할 자유,
▪ 삶에서 추구하는 의미
▪ 존재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겸허함
▪ 애정 어린 관계의 힘이다.

행복의 정도는 외부적 요소에 의존할 때보다, 그 의미가 내면의 개인적 목표에서 비롯됐을 때 훨씬 더 큰 행복을 부른다. 예를 들면,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열정을 키우고 싶다. 타인의 삶이 개선되도록 돕고 싶다 등이다. 반면, 외부적 요인이란 명성을 쌓는 것,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해지게 하려면, 결국은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걸 알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우선 신뢰 관계를 반드시 맺어야 한다. 그래야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자기 지신을 솔직하게 대면 할 수 있고, 습관적으로 받아들인 역할과 거리를 둘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내가 나아갈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질문은 이런 거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가 존중 받으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들을 일상 속에서 행동으로 옮기려 면 무엇이 필요한가 또한 묻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 질문들이 내 삶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 삶에서 늘 아니 항상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도전할 만한 가치는 있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본질을 존중하는 일이 아무리 힘겹다 해도, 그게 내면의 평화와 충만한 의미 속에서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삶에서는 프랑스 18세기 철학자 볼테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내가 박사학위를 했던 전공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각자의 정원에 '행복의 작은 씨앗"을 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말레나 뤼달은 자신의 책 『우리도 행복해 질 수 있을까』의 결론에서 이런 예들을 든다.
▪ 몇 달 뒤 우연히도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지 모르는 누군가와 꿈을 공유하기
▪ 중요한 계획을 위해 은행 계좌를 만들어 매달 조금씩 저축하기
▪ 미래에 새로운 삶을 열어줄지도 모르는 관심 분야의 수업을 저녁마다 듣기

진정한 행복의 비결은 우리 안에, 스스로 가꾸는 나 자신과의 관계 안에 있다. 자신을 더 많이 알수록 선택의 기준이 될 중요한 가치를 더 분명히 깨닫고, 습관을 만들어, 방해물을 잘 피해 삶을 더 잘 헤쳐 나가며, 행복의 환상-아름다움, 돈, 권력, 명성 그리고 섹스-에 눈이 머는 일 없이 존재의 쾌락을 더 기쁘게 만끽할 수 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인은 컴컴한 얼룩 하나 만들고 지우는 일이 한 생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의 절반과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남은 그 세월 동안 넋 놓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고 한다. 여전히 싹 틔우고 꽃망울도 맺고 싶기 때문에.  "이러 저러 한 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 밭일진대/남은 삼십 년 그 세월 동안/넋 놓고 앉아만 있을 몸뚱어리는/싹 틔우지도 꽃망울을 맺지도 못하고/마디 곱은 손발이나 주무를 터" (…) "나머지 절반에 죽을 것처럼 도착하더라/있는 힘을 다해 지지는 마오." 행복한 삶, 이 남은 생의 절반에 서서 세운 목표이다.

생의 절반/이병률

한 사람을 잊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이 사는 데 육십 년이 걸린다 치면
이 생에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나니

당신이 살다 간 옷들과 신발들과
이불 따위를 다 태웠건만
당신의 머리칼이 싹을 틔우더니
한 며칠 꽃망울을 맺다가 죽은 걸 보면
앞으로 한 삼십 년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데
꼬박 삼십 년이 걸린 셈

이러 저러 한 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 밭일진대
남은 삼십 년 그 세월 동안
넋 놓고 앉아만 있을 몸뚱어리는
싹 틔우지도 꽃망울을 맺지도 못하고
마디 곱은 손발이나 주무를 터

한 사람을 만나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을 잊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고 치면
컴컴한 얼룩 하나 만들고 지우는 일이 한 생의 일일 터

나머지 절반에 죽을 것처럼 도착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지지는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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