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진정한 나와 사회적 역할을 혼동할수록 삶은 불만으로 가득해진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1. 2. 18:41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설렘으로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다. 이 번주는 여러 가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제는 사람 만나는 일을 최소화 하고, "나를 향해 걸어 가는 쉼 없는 걷기"를 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혼란할 때마다 기억할 한 문장을 만들었다. <데미안>을 다 읽고 정리한 것이다. '자신과 하나가 되어,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라는 믿음 갖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래야 행복하다. 독보(獨步)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뿐이다. 독보적인 인간이란 자신이 택한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만의 삶의 문법을 알아내 조용하게 자신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이다.

쉼 없는 나를 향한 걷기를 통해, 자신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숭고한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신체, 정신 그리고 영혼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 훈련된 자신은 내가 꿈꾸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으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이 타인의 존경을 자아낼 수 있고, 누구를 부러워하지도 않고, 흉내를 내지 않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면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삶을 토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침마다 글쓰기를 하면서, 나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진 유일무이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자극하며 키우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가 늘 말하는 것처럼, 바람직한 것보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좋은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 테다. 어제 오후에 국민일보 이지현 종교 전문 기자의 칼럼을 읽었다. 그 글에서 기자는 "지금 삶이 우울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라 말했다. 나 자신과 하나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서 기자는 미국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를 했다. 그에 의하면, "‘당위적인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충돌할 때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당위적인 자아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집을 사려면 돈을 벌어야 해’ ‘승진하려면 완벽하게 일해야 해’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출세해야 해’ ......  그런데 그 조건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일수록 사회가 만들어준 신념에 맞춰 산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 채 나이가 들어간다.

진정한 나와 사회적 역할을 혼동할수록 삶은 불만으로 가득해진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내면과 삶을 향해 진실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던진 질문만 들여다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은 잠든 내면을 깨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거의 같다. 기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의 시 <선택의 가능성>이라는 시 일부를 소개했다. 그래 오늘 아침 나는 구글에서 시의 전문을 찾아 공유한다.

오늘 아침 시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 네가 바라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시인은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여류시인이다. 나는 이 시인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 틈나는 대로 아침에 읽는다. 이미 여러 번 공유한 적 있다. 특히 좋아하는 시는 <두 번은 없다>이다. 내일도 모레도 이 시인의 공유할 생각이다. 노벨문학상을 탈 때, 스웨덴 한림원은 시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짜르트 음악 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  그녀의 시 속에서 우리는 인류의  보편적인 본성에 대한 통찰,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등 시인의 목소리는 강렬하지만 포근하다.

이 시를 소개하고 있는 https://biencan.tistory.com/ 에서 만난 시인의 소개이다. "시인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모름'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독재자들, 광신자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가들의 공통점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지식은 세상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모르고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구원할 정신이라고 시인은 본다. 겸손이야말로 쉼보르스카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어쨌든 시인 쉼보르스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선택의 가능성/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중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 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겸손이다. 이걸 배워 나 자신의 삶을 더 높고, 더 넓고, 더 깊게 고양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가짐과 몸  가짐을 스스로 관찰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데미안> 북토크에서 최교수는 이런 식의 '자기를 향한 부단한 걷기'에서 숙고(熟考)를 강조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만 한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럼 무엇을 숙고하라는 말인가? 그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이것들을 숙고하라고 했다. 작년에 읽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 읽은 것인데, 매우 인상적이어서 노트에 적어 두었던 내용이다. 읽을수록 맛이 난다.

우리가 흔히 안다고 하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니 사실 아는 것은 과거에 안 것이다. 과거에 알았다고 해서 지금도 아는 건 아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모른다'에서 '안다'로 가는 어떤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그걸 가장 잘 표현하는 동사는 아마도 '산다(生)'가 아닐까? 산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몰랐다가 알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미래에 어울리는 동사는 '모른다'뿐이다. 정리하자면, '과거=안다', 현재=산다', 미래-모른다'의 공식이다."

이 공식을 보면, 우리들 인생 문제의 대부분은 자꾸만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하거나,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거나, 미래를 알려고 할 때 일어난다. 그 중에서도 문제의 근원은 자신이 지금이나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뭘 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주장이 흥미롭다. "미래에 대해서는 오직 모를 뿐이다. 현재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살 수는 있다. 과거는 다시 살 수 없는 대신에 알긴 안다. 하지만 이 안다는 건 지금이나 미래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여기서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니 잘 살려면,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아는 것보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문제는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제곱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다. 지금-여기서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살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한다.
- 현재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다.
- 미래를 알려고 한다.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마친다. 대신, 오늘 아침 시를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는 것을 그 시에 덧붙이고 싶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 자연과 대화를 하며, 걷는 것이 즐겁다. 나는 아침에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어린 아이들을 좋아한다. 문제는 다소 감각적이고,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만족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최진석 교수는 숙고한 만족, 지적인 만족을 더 강조했다. 나도 동의한다.

나는 전자의 만족을 즐거움이라 보고, 후자의 만족을 기쁨이라 본다. 왜냐하면 즐거움과 기쁨은 다르기 때문이다. 즐거움이란 마음에 거슬림 없이 흐뭇하고 기쁜 느낌의 마음으로 어떤 상태라면, 기쁨은 어떤 행위의 결과로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다. 그래 이런 문장이 가능하다. 많이 가진 자의 즐거움이 적게 가진 자의 기쁨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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