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플롯 포인트(plot point)'를 찾아야 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9. 18:05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도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이야기를 하려 하니, 작가들의 아픔으로부터 오는 '속절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박형준 시인의 <가구의 힘>이 생각 났다. 오늘 오후에 소설 쓰는 김연수 강의에 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김연수가 산문집에서 말한 소설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안에서 밀어내는 어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떤 형상을, 어떤 사태를, 어떤 심정을, 어떤 부끄러움을 누구에게 고백하듯이 쓰는 사람이다. 작가가 되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나도 아침마다, 사진과 시를 하나씩 고르고, 몰입하여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속이 편하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플롯 포인트(plot point)'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대개의 이야기에는 두 개의 큰 플롯 포인트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3막 구조이다. 김연수는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돌이킬 수 없는 다리' 혹은 '불타는 다리'라 부른다. 이 지점을 지나면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주인공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이처럼, 우리도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 처음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살고, 그 다음에 결말에 맞춰서 두 번의 플롯 포인트를 찾아내 이야기를 3막 구조로 재배치하는 식으로 한 번 더 살 수 있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 젊은 시절 대충 살았다면, 죽음을 앞당겨 결말을 성찰하고, 그 결말에 맞춰 다시 제2의 인생을 살면 된다. 내 인생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소설을 쓰듯이, 삶의 이야기도 다시 쓰면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지나온 다리'에 불지르는 방법이다. 두 가지가 있다. 주인공이 자신의 캐릭터 설정때문에 다리를 불태우면 캐릭터 중심, 캐릭터의 성격과 무관하게 외부의 사건 때문에 다리가 불타면 플롯 중심이다. 캐릭터 중심의 소설은 내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느리며, 플롯 중심의 소설은 외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빠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곡선을 그린다. 플롯 중심의 소설에서는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최고조에 달한 뒤 순식간에 풀리는 곡선이다. 플롯이 변화를 이끌면, 대개 캐릭터는 처음이나 끝이나 큰 변화 없이 비슷하다. 반면 캐릭터 중심의 소설에서는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가 곡선을 만든다. 이런 소설에서는 플롯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거나 평범하다. 그러나 캐릭터는 처음 소설이 시작할 때와는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져 있다.

김연수 소설가처럼, 나도 캐릭터 중심의 소설을 좋아한다. 김연수 소설가처럼,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할 때, 나도 무조건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리해 본다. 전통적인 이야기 작법에서 플롯은 3막으로 구성된다. 1막의 끝에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다. 각 막에는 여러 개의 장면(scene)이 있고, 장면 안에는 주인공의 결심, 그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 새로운 사실의 발견 등의 짧은 순간을 뜻하는 비트(beat)가 있다. 비트는 주인공이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무슨 일인가 벌어지게 만드는 요소로 보면 된다. 연재소설이 이것을 잘 사용하여 다음 연재를 기다리게 만든다. 이 비트와 비트를 연결하는 일련의 장면을 시퀀스라 한다. 플롯은 '막-시퀀스-장면-비트-액션'의 순서로 구성된다. 여기서 액션은 행동을 말한다. 플롯의 최소단위이다.

액션(action), 즉 행동은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뭔가를 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게 갖춰진 사람들은 행동할 필요가 없다. 원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갖지 못한 사람들, 이루지 못한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 만이 행동한다.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원할수록 가지기도, 이루기도, 되찾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야기 작법에서 행동은 반드시 갈등을 일으키고 이 갈등은 주인공을 감정적으로 좌절 시킨다. 그러나 좌절한 주인공은 이 좌절을 곰곰이 생각한 뒤에 다시 행동한다. 이를 리액션(reaction)이라 한다. 여기서 리액션은 반응, 반작용, 반발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재 행동, 한번 더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재행동은 약간의 성과를 내지만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그래 주인공은 감정적으로 더 크게 좌절한다. 그래서 플롯은 전체적으로 봐서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면서 판돈을 계속 높여가는 도박과 비슷하다. 그래 소설쓰기는 '주인공이 행동한다-좌절한다-곰곰이 생각한다-다시 행동 한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쓴다-좌절한다-곰곰이 생각한다.-다시 쓴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우리 좌절하지 말자. 김연수 작가는 뇌과학에서 말하는 신경가소성*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은 반복된 경험이 뇌의 구조를 바꾼다는 사실이다. 신경가소성에 의하면, 사람은 반복하면 할수록 뇌의 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어떠 일을 계속 연습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것이다. 예를 들어, 의식적으로 하루에 세 번 농담을 던지는 행동을 계속하면 뇌의 신경경로가 농담을 잘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재 구조화된다. 그렇게 일단 뇌가 바뀌면 사람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머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생활에서 이를 실천하면 사십 년 뒤에 내가 농담을 잘하는 할아버지가 된다. 점점 우스워지는 사람이 있을 뿐, 날 때부터 우스운 사람은 없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일에 몰두 하느냐에 따라서 세계를 해석하는 우리의 방식이 새롭게 결정되고, 일단 그렇게 생각이 바뀌면 다시 그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 캐릭터 소설이 추구하는 일이다. 시련에 맞서서 행동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이 인생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즉 세계관이 바뀌는 셈이다. 소설에서 그 바뀐 것이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는 주인공의 대사와 행동과 표정과 몸짓으로 알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말해 봤자 드러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로 그의 세계관이다. 생각만 바뀌는 것은 무의미하다.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 오늘도 많이 웃고, 삶을 긍정하고 찬미하며, 모든 이들에 친절을 베풀자.

비극이란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끝나는 이야기를 뜻한다.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인생의 묘미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더라도 굴복하지 않는 모든 시련이 우리를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걸 성격 형성이라 말한다. 어쩌면 "가구의 힘"이다.

가구의 힘/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은 인간의 두뇌가 경험에 의해 변화되는 능력을 말한다. 즉 뇌가 성형적(plastic)이고 순응성이 있다(mollable)는 것이다. 이러한 두뇌의 특징은 현대에 와서야 발견되었다. 우리의 뇌는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자기 스스로를 한계내에서 재설계할 수 있다는 능력을 진화 시켜왔다. 해부학적 뇌 구조의 가소성 덕분에 개개인의 활동에 적합하도록 뇌를 맞춤 설계를 하는 게 가능해 졌다. 뇌는 신경세포(뉴런)와 신경교세포가 연결되어 구성된다. 학습은 신경세포 연결 길이의 변화, 연결의 추가 또는 제거, 그리고 새로운 신경세포의 형성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데, 가소성은 바로 이러한 학습과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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