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현대 소설은 주인공의 동기(動機)를 파헤치는 장르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8. 15:27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도 소설 쓰는 사람 김연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만난 생각들을 공유한다. 난 이런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전공이 소설 비평이라 많은 소설 작법 책을 읽었지만, 김연수의 글은 쉽게 읽힌다는 것이 장점이다. 소설이론을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현대 소설은 주인공의 동기(動機)를 파헤치는 장르이다. 용기, 욕망, 동기 다 같은 말이다. 다만 욕망은 마음의 문제지만, 동기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과 과거의 경험이 집약된 동기이다. 공식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다. "현재의 괴기한 사건+그 사건의 동기를 말하는 기나긴 맬로 드라마+괴기함 속에 숨은 자연적 질서를 이해하는 결말"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 소설 『마담 보바리』=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한 의사 부인의 끔찍한 음독 자살+ 왜 마담 보바리는 불륜에 빠져서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됐는가? + 어떤 부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일탈을 보바리즘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결말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공식: '이야기=사건+동기+결말"에서 동기를 설명하면 멜로 드라마, 사건 중심이면 추리소설이 된다. 추리 소설은 플롯이 이끄는 소설이 되고, 그 반대편이 동기를 중요시하는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이 된다. 대중문학은 플롯이 이끄는 소설이고, 본격문학은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이다. 그리고 기법으로는 '왜?'라고 계속 묻는 것과 '어떻게?'라고 계속 묻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일인칭 주인공 시점, '나'가 주인공이라면 모든 걸 소설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반면, 관찰자 시점에서는 주인공을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는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을 미워한다. 사랑할 만한 사람은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 매력(魅力)이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온 몸으로 껴안는 행동을 할 때(특히 고생할 때), 그걸 지켜보는 사람(작가나 독자)의 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소설의 플롯은 대개 지금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서 고생하는 이야기이다. 고생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고를 무릅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고생의 길로 나설 때, 우리는 그 인물에게 매력을 느낀다. 스토리텔링의 치유 기능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사랑이란 행동이 아니라, 말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면 서로 알고 싶어 더 많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더 구체적으로 더 많이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많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거기서 나온다. 사랑이란 그 사람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 즉 그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 소설을 읽는 경험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경험과 닮아 있다.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에 관해 더 구체적인 정보를 남들보다 더 많이 듣게 되면 결국 우리는 그의 삶에 감정이입 하게 된다. 그러면 그의 삶이 어떤 스토리로 보이면서 그의 성격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성격이 매력적이면, 외모도 매력적으로 바뀐다.

김연수에 의하면, 소설가에 필요한 동사는 세 가지이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이다. 소설가는 제일 먼저 쓴다. 그 다음에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쓴다. 모든 글쓰는 사람들이 생각해 볼 내용이다. 우선 쓴다. 그리고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는 제일 바깥 쪽이 추상적이고 큰 단어들이다. 예컨대, 평화, 정치, 슬픔, 절만 따위의 단어들이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체적이고 작은 단어들이 숨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의 힘, 염력(念力)이 필요하다. 소설가는 생각하며, '왜?'와 '어떻게?'로 질문을 한다. 그렇게 하여 가능한 구체적으로 대답을 한다.

소설가의 작업에는 4 단계로 이루어진다 (1) 이야기 공식 짜기 (2) 소설가 앞에 놓인 두 개의 상자, 왜?와 어떻게?를 준비한다. (3) 빈도수 염력(念力) 사전 만든다. (4) 인과(因果)의 사슬 만들기이다. 소설에서 모든 문장은 사슬의 형태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가는 모든 질문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핍진성(逼眞性)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핍진성은 어려운 말이다. 핍진성의 사전 정의는 이렇다.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이다.  핍진성은 '그럴듯함의 원칙=verisimilitude=vraisemblance', 진실(사실)임직함, '있음직함'이다. 어렵게 말하면,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으로, 구체적으로는 동기 부여나 세부 묘사 등의 소설적 장치이다. 핍진성은 인간의 본성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관되게 행동하기 때문에 인과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물의 성격 뿐만 아니라 사전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진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는 구체적인 문장을 넘어서 핍진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다. 핍진성은 캐릭터를 만들고 플롯을 짜는 것이다.

배철현 선생의 글을 읽다 적어 놓은 내용이다.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는 우주가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낸 영원한 메트릭스라면, 그 메트릭스를 운행하는 원칙이다. 우주는 원인과 그것에 적당한 결과라는 영원한 원칙의 작동 안에서 존재한다. 우리는 인과의 명백하고 정당한 관계를 정의라고 부른다. 우주의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정교한 관계 속에서 완벽한 조화 통해 유지된다. 우주 안 만물들은 인과의 절묘한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조정한다. 이 조화가 무너지면 혼돈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인과원칙을 통해 생성되었고, 인간의 생각, 말, 그리고 행위도, 그것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이 어떤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그 결과까지는 선택할 수 없다. 인간이 어떤 것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지만, 그 생각과 행동의 결과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그 결과는 원인의 당연하고도 엄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의 은행나무들이 물들었다. 지난 토요일 동네를 걷다가 찍은 사진이다.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로 은유한 시인의 생각이 곱다. 나의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 앞의 은행 나무가 다르게 보인다.

별 닦는 나무/공광규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 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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