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쓸모 없음의 쓸모"에 대한 생각나누기 시간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8. 13:18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강의는 내가 했는데, '졸가리'는 명품 후기를 쓰시는 에트리의 보물, 이순석 부장님의 후기가 '훨' 낫다. 공유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도래하는 초연결시대의 본질을 통찰하면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의 신기축을 탐색하는 새통사입니다.

이번 140차 새통사 모임에는 인문운동가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님을 모시고, "쓸모 없음의 쓸모"에 대한 생각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잇단 대형사고의 속출에 따른 과학기술계의 역할론 부재 문제, 진전이 없는 국가적 차원의 혁신적 성장 부진의 문제 등이 겹치면서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론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와중인지라, 쓸모 없음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생각들을 불러 세우기에 충분했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율성 요구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출연연의 입장에서 자율성 속에 함축되어 있는 쓸모 없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 출연연과 과학기술인들의 삶의 자세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대표님은 과학과 공학과 기술과 인문과 예술과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의 유영을 통한 새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통찰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새통사의 중요한 코너스톤 역할을 해 주시며, 적절한 시기에 시대적 목소리를 담아야 할 시점에 적절한 강연으로 새통사에 흐트러짐을 바로 잡아 주시고 계십니다. 특히, 과학기술인들의 과학문화운동에 영감을 받아, 스스로를 <인문학자>에서 <인문운동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문정신을 생활운동화를 추구하고 계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매일 아침 <사진 하나, 시 하나>라는 글을 쓰고 나누기와 <인문운동가의 시대정신>, < ‘참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글을 쓰고 나누기를 하고 계십니다. 새통사 식구들에게는 A4용지 35페이지에 이르는 강연자료로 유발 하라리의 최신저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이라는 책의 요약집을 덤으로 선물을 주고 가셨습니다. 스마트폰에 담고 다니시면서, 자주 많이 읽어 달라고 하십니다.

1. 쓸모 있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박한표 대표님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쓸모 었음의 추구 풍토>의 예를 들려 주십니다. 미국의 현장 조사 여행 중 교통사고로 허리를 심하게 다쳐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 된 그는 해양학자 이상묵 박사의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이상묵 박사님은 과학자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양태를 <0.1그램의 희망>에서 이렇게 비교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제까지 없는 새로운 연구라면 그게 무엇이든 무조건 연구비를 지급한다. 일본은 어떻게든 미국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지원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것에 투자하면 우리나라가 돈을 벌 수 있고 반도체, 자동차 이후의 주력 수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연구비가 나온다. ‘대박’을 내든가, 하지 않으면 치도곤당할 일에만 연구비가 지원되는 편협한 실용주의적 태도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또, 40년 전 김현 작가의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김현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썼는데 그 도전적인 책의 서두는 한가한 에세이풍 회고로 시작한다. 소년시절 소설책을 읽는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책을 읽어 무엇 하려느냐”는 어머니의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그는 머리 좋은 자식들이 으레 듣는 의사나 판검사 공부 대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문학을 공부했고 비평가가 되어 마흔 나이에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습니다.”라고.
-이번에는 이태리 종신학술회원이신 김병익 박사의 칼럼을 회고해 주신다. <김병익의 칼럼>의 내용이다.
  
독일 본 대학 교수 헤르츠는 부도체도 통과할 수 있는 전자파를 실험하여 ‘라디오’로 명명되는 ‘헤르츠파’를 확인한다. 이 발견의 쓸모가 무엇이냐는 한 학생의 질문을 받은 그의 대답이 뜻밖이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 그냥 거장 맥스웰 선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실험일 뿐일세. 우리는 지금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 미스터리한 전자기파를 확인한 거라고.” “그다음은요”라고 묻자 헤르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아마 교실 안의 젊은 대학생들은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시끄러웠을 것이다. 힘든 연구와 실험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거리’라니. 순진한 열정의 무용한 노력이라니! 그렇기에 학생들은 더 재미있고 신이 났을 것이다. 이 유쾌한 장면을 소개한 피터 왓슨의 <컨버전스>는 여기에 후일담을 붙인다. 헤르츠의 스파크 파동 논문을 읽은 이탈리아 청년 마르코니는 전자파동을 신호로 보내는 데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것이 편지나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을 전보, 전화의 20세기 전자 통신으로 바꾼 혁명적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대체로 이처럼 무용한 이론적 발견이 문명적 실용으로 변용되어 이룬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며 회상된 것이 1960년대의 우주공학 개발이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여 인공위성이 지구 상공을 돌기 시작하자 미국은 불끈 일어서며 소련을 뛰어넘자고 외쳤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8년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설치하여 냉전 시대에 소련과의 새로운 경쟁을 선언한 뒤를 이어 케네디 대통령은 인간이 10년 안에 달에 착륙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마침내 1969년 7월 우주인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내디디며 “이것은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인사를 보냈다. 이 벅찬 역사적 장면을 나도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인간의 문명을 우주로 비약시킨 인류사적 대전환”으로 감동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 모두가 흥분했던 것은 아니다. 그 이후의 우주선 사고로 귀중한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은 오히려 사소하게 보일 정도로, 우주과학에 들인 노력에 비해 거기서 거둔 실용적 성과는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신랄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분화구투성이의 달에서 가져온 것이란 돌덩이 몇개뿐이었다. 1966년의 나사 예산은 59억달러로 미국 국민총생산의 1%에 육박했고 직원은 3만6천명이 넘었다. 그들은 그즈음 우리나라 3500만의 국민총생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막대한 경비에 비해 그 초라한 소득을 보며 그 엄청난 돈으로 굶주린 아시아·아프리카의 후진국 지원과 개발에 사용하면 세계는 좀 더 풍요해질 것이라는 발언이 설득력 있게 번졌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후에 깨달았다. 그 자신 우주비행사였던 존스의 <나사, 우주개발의 비밀>은 인간의 우주여행을 위한 과학적 공학적 노력을 기록하면서 그 우주여행 기술이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 공헌했지만 특히 통신과 기상 두 영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쓰고 있는데, 나 같은 소심한 지식인들이 보기에도 이 평가는 너무 소극적이다. 그가 들고 있는 통신 기술과 기상학에의 기여란 직접적이고 제한된 범위에서만일 뿐이다. 인간의 달 착륙에는 20㎞ 거리에서 바늘구멍을 뚫는 일에 비교되는 초정밀의 과학과 공학 수준을 요구했고 각가지 새로운 소재와 기술의 개발, 우주 공간 상태를 견뎌낼 의학적 대비가 필요했다. 여기서 내게 특히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그 숱한 우주과학기술의 추진과 활용 및 산업화 정책에 대한 미-소 두 라이벌국의 상반된 정책이다. 소련은 미국보다 앞섰던 우주공학 연구와 실험 결과를 국가기관의 연구소에서만 하도록 폐쇄적으로 제한했지만, 미국은 우주여행을 위한 신소재·신기술의 개발, 여기에 필요한 컴퓨터공학과 그것의 범용화를 민간에 개방하고 외부 연구 및 산업 자본과 합작하며 상품과 서비스의 스마트화로 확산하도록 그 과학과 기술들의 산업화, 실용화에 개방적이었다. 30년 후의 그 결과가 미-소 간의 경제적 격차와 문명적 거리였고, 그로 말미암은 동서 냉전 구도의 해체였다.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된 것은 쓸모 없어 보인 달여행을 위한 과학기술의 연구 결과들에서 비롯되었고, 무용한 노력으로 비판받은 우주여행 투자가 의외의 세계 체제 변혁을 추동한 것이다.
  
-박 대표꼐서는 한국사회에 만연된 <쓸모 있음>이 대접받는 문화에는 <쓸모 있음>이 <쓸모 없음>이 마련해 준 자유의 힘을 말씀하신다. 그러한 자유는 쓸모 없음의 인식으로 일어나게 하고, 쓸모의 의미를 살피고 현실을 반성하며 거기서 문화와 예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인문적 덕성과 윤리적 관용을 키우며 인간의 아름다운 가치의 세계로 고양하는 힘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2. 쓸모 없음을 만들어내는 자유를 위한 기술, 인문학

-빅대표께서는 틀에 얽매지 않는 자유, 정치적 프레임, 사회적 관습, 종교적 굴레 등으로부터 자유로지는 힘을 얻기 위한 비판적 정신이나 저항하는 정신을 인문학이라고 풀어 주신다. 그래서 인문학을 영어로는 liberal arts라고 한단다. 자유기술, 자유를 위한 기술을 익히는 학문, 최종 목적지가 자유인이 되기 위한 것이 인문학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이유를 교양인으로 삶을 충실히 살아서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적 단계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BC5세기 중엽에 그리스의 폴리스 시대에는 리더를 키우기 위한 교육과정인 Paideia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사회는 자유인과 노예를 확실히 구분하는 신분제 사회였고, 그 사회에서 리더란 자유인으로 불리는 ‘능동적인 시민’을 말했고, 피지배 계급으로서 자유가 없는 수동적인 노예들을 선도하고 끌고 나아가는 지배계급을 양성했다고 한다. 이 사회에서는 당연히 자유인은 지시하고 노예들은 그 방향을 항해 나아간다. 자유인들은 이끌고 노예들은 따라간다. 교양은 이러한 분이기 속에서 잉태되어 자유인으로서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고안된 교육 장치였다. 교양은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아는가 하는 것보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방향성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힘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겠나라고 풀어주신다.

-그러한 진정한 자유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미래보다는 현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 미래의 쓸모 있음보다는 당장의 쓸모 있음만을 쫓는다. 박 대표께서는 중국 고전 속의 황당무계한 허풍과 과장을 즐기는 중국인들의 이야기, 그리스 신화의 '뻥' 이야기도 하신다. 체게바라의 황당무계할 정도의 혁명적 활동 이야기, 돈기호태의 꿈 같은 삶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이야기 해주신다. 가능적 시각에서 보면, 모두 쓸모 없음의 전형이다. 그러나, 세계의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은 ‘이미 있는 것’과 ‘아직 없는 것’ 사이의 대립 투쟁이다. ‘아직 없는 것’이 ‘이미 있는 것’을 약화시키거나 무화시키면서 세상에 ‘있는 것’으로 실현되는 일을 총체적으로 문화(文化)라고 한다. 어떤 것이 이 세상에 나타나 변화를 야기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진보고, 진화고, 발전이고, 변화다. 당연히 변화의 주도권은 시선이 ‘아직 없는 것’에 가 있는 사람의 몫이다. 창의적 도전은 ‘아직 없는 것’을 향해 걸으며,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일이지 않은가. 신화나 우화는 ‘없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변화의 주도권은 마음속에 신화나 우화를 품고 있는 측이 갖는다. 이것이 삶의 비밀이자 비결임을 일러 주신다. 현대 세계의 주도권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후예들이 가지고 있다. 신화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스케일의 문제임을 일러 주신다. 여기서 스케일은 어느 것이 더 비사실적이고 더 황당한가의 문제다. 문명의 주도권이 약한 곳에는 신화가 약하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명은 신화라고 말씀하신다. 문명은 신화의 사실화 과정일 뿐이다. 인간은 신화를 실현시키는 존재임을 일러 주신다. 환상의 구체화가 삶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해 주신다.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학문적 성과도 그렇게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상상하며 산다. 그러하기에, 우리나라의 양적이고 질적인 규모는 바로 우리가 가진 신화의 규모라는 박 대표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 대표꼐서는 그런 신화의 규모를 확장하는 방법론으로 감각의 지평을 넓혀서 갇힌 我를 죽이고 진정한 吾를 살리는 오상아 정신, 감각에 매몰되지 않고 사유하며 큰 트임을 얻는 좌망하는 자세, 현상에 매몰되지 않는 본질과 통찰을 볼 수 있게 하는 마음, 심재의 자세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의 본질을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훈련을 통하여 자유인으로 거듭나길 권하신다. 말은 쉽지 않는 일이다. 하여, 박 대표꼐서는 6가지 실천법을 제시해 주신다.
  
1.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이롭게 하는 것, 남에게 내 것을 내주며 나누는 삶, 이기심을 줄이는 삶, 따뜻한 마음이 주위에 퍼지게 한다.
  
2.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남을 어렵게 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삶, 욕심의 유혹을 이겨내는 삶, 자제심을 잃지 않고, '욱'하는 마음을 참는 것, 무질서를 단속한다.
  
3. 남을 배려한다.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삶, 상황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표현하기, 상황을 참고 견뎌내기, 열린 마음. 새로운 것을 조화롭게 받아들이고, 좁은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게 한다.
  
4. 자명한 것만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 나의 선택과 판단에  '찜찜함'이 없는가? 진리를 더욱 밝히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5. 한 번만 배려는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는 성실한 삶, 나태함을 경계, 꾸준함을 이기는 힘은 없다. 자연의 성실함을 배운다.
  
6. 얻고자 한다면 버려라. 그러면 정말 필요한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아집, 편견 그리고 무지를 버리고 늘 깨어 있는 삶, 평정심을 유지하기, 방심하거나 심란함을 가라 앉히기, 잡념같은 '딴' 생각 줄이기, 지금 하는 일에 즐겁게 그 일만 생각하며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 .
  
바쁜 와중에도 쓸모 있음을 만들어 내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출연연의 과학기술인들에게 시의적절한 말씀을 해주시기 이하여 시간을 허락해 주신 박한표 대표님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희망하시는 인문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도록 기원하고 응원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