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7. 10:40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 번 살아보세요. 돈과 권력이 있다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 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 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세요. (…)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고요. 건강할 때 있는 돈은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입니다. (…)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겠지요.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너무 총망히 살지들 말고. 후반전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만년을 위해, 지금부터 라도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 힘없는 나는 이제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

지난 10월 25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자 어제 26일에는 SNS를 통해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마지막 편지>라는 제목의 글 올라왔다. 그런데 가짜 편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가슴을 잔잔하게 울릴 만한 것들로 채워져 있어, 나도 한 번 읽게 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못했고, 6년5개월간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그가 했다는 '말' 또는 '글'은 어떤 형태로도 단 한 차례도 전해진 적이 없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임종 전에 유언했거나, 글을 남겼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 글은 1년 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등에 확산됐다가 진위를 의심받았던 적이 있다.

오늘 아침 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날 새벽 3시에 썼다는 미국 시인 도마 마르코바의 것이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챙김의 시>에서 가져왔다. 사진은 지난 주일에 늘 산책하는 탄동천에서 찍은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삼성의 공과를 떠나서. 삼성에 대한 비판과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는 두 개의 글을 시 다음에 공유한다.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 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시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이건희 회장에 평가는 두 개로 극명하게 구분된다. 내가 평소에 즐겨 읽는 목수정 작가의 담벼락에는 연 이틀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무리 망자 앞에선  관대해지는게 우리 문화라지만, 이건희 한테까지 그럴 줄은 몰랐네.  정주영은 소떼라도 북한으로 몰고가 남북관계 물고라도 텄지. 이건희? 남의 기술 탈취하고, 중소기업 주리 틀고, 무 노조 경영하고, 노조 하려는 모든 사람 끝까지 추적해 인생 부러뜨리고, 법무부 장,차관, 검찰 고위 간부에 떡값 정기적으로 바치며 법치를 무력화하고, 상습적 탈세하고, 대통령들 한테 뇌물 주고, 이권 챙기고, 삼성차 욕심에 기아 차 인수 공작벌여 IMF 외환위기 사태에 결정타 날리시고... 무엇보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로  천박한 일등제일주의,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남 밟고 올라서라는 치명적인 가치관 주입에 성공,  과정 무시하고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로 가는데 크게 한몫 하셨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옥 갈 일만 잔뜩 한 것 같은데. 하필 죽은 날도 아들 파기 환송심 시작되는 전날... 마지막까지 절묘하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지 않았 어도, 삼성한테 기술 뺏기고, 알몸으로 쫓겨난 중소기업 사장이 아니어도, 삼성에서 노조 하려다가, 일생을 난도질 당하지 않았 어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이건희는 씻지 못할 죄를 진 사람이다.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그는 여생을 감옥에서 마감해야 했다.

자동차 매니아였던 그가, 삼성이 만든 차를 갖고 싶어 기아 차 인수 공작을 벌였고, 그것이 IMF 외환위기 사태의 기폭제가 되었단 사실을 당시엔 모르는 사람이 없었건만 지난 세기여서 다 잊은 건가. 기아 차 인수 공작에 의거,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빌려준 4000억원을 급작스레 회수하는 바람에 기아가 재정난에 봉착하며 파산했던 것이 1997년 7월이다. 재계 서열 8위 기업의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는 위태롭던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며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초래했고,  한국은 그해 말 끝내 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하며 비참한 '경제 피 식민지'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상호 기자가 공개한 X파일에는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공작이 당시 집권세력과 언론, 삼성의 야합이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IMF 빚은 다 갚았으나, 그 사이 한국 사회의 주요 금융사, 우량 공기업들엔 외국자본이 자리잡았고,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쫓겨난 중년들은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비정규직은 모든 청년들의 운명이 되었다. 모두들 잊은 듯 하여, 그 낡았지만 잊을 수 없는 X 파일을 다시 꺼내 본다."

IMF 외환 위기는 외채를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총 195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사건이다. 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기업 구조조정, 공기업 민영화, 자본시장 개방, 기업 M&A(인수·합병) 간소화 등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헐값에 외국자본에 넘어가고 대량해고에 따른 실업자 문제가 발생했으며 이때부터 ‘정년’ 개념이 없어지고 비정규직 문제 등 고용불안이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우리 사회는 IMF 이전과 이후로 크게 대비된다.

나는 경계에 서서, 이건희 회장과 한국의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 시대가 지닌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는 일방적 재단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대부분의 정치권은 비판적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난 당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그러나 고인은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며 "삼성은 과거의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의당의정호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이라는 초법적 경영 등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재계와 언론은 매우 찬양적이다.

나는, 배철현 교수의 말처럼, 상인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최고의 품질로 행복을 전해준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배철현 교수는 이건희 회장이 보여 준 두 가지 의려를 소개하였다. '의례'(儀禮)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그 최선을 발견해 구태의연한 과거의 자신을 유기하거나 태워버리고, 앞으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미래를 위한 결심이다.

- 첫 번째 의례는 1993년 6월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임직원 60여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다. 당시 삼성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혁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삼성 임직원들을 1993년 4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불러 모았다. 하루 8시간 이상 강연과 토론을 한 달 이상 진행했다. 그해 6월7일 이 회장은 우리에게 회자된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마누라와 자식 빼놓고 다 바꾸십시오." 혁신은 변경이나 조절이 아니라, 상상하지도 못한 모습으로의 탄생이다. 혁신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힘이며, 알에 존재하던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 알을 깨고 나와 하늘을 호령하는 독수리가 되는 과정이다. 유대인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중요한 시점에 의례(儀禮)를 행했다. 이 의례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신에게 드리는 상징적인 헌신이다. 유목민에게 어린 숫양은, 그가 속한 가족의 먹을 것을 책임지는 핵심이다. 숫양은 암양을 만나 새끼를 낳아주고, 점점 불어나는 털은 추위를 막아준다. 그들은 어린 숫양을 완전히 연소해 그 연기를 하늘로 올려보낸다. 이것이 영어로 '홀로코스트'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칭하는 용어가 된 홀로코스트는 '완전'(홀로) '연소'(코스트)라는 뜻이다.
- 두 번째 의례는 1995년 경북 구미시 삼성 휴대폰 공장에서 행해졌다. 이 회장은 품질혁신을 강조하면서 그전까지 생산했던 10만대 이상의 삼성 제품을 '완전 연소'시켰다. 그가 2년 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행동으로 옮겼다. 삼성 직원들은 이 화형식에서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고 외쳤다. 제품의 품질은, 다른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약간의 우위를 차지해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최선을 담은 인격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그래서 그런 물건을 만든 자신을 존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도약이 필요하거나 위기를 맞을 때 이 건희 회장은 강렬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내놨다. 워낙 효과적이어서 “메시지 전담 조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관계자는 “이 회장에겐 사물의 핵심 이치를 찾아내고 이를 짧고 압축적인 언어로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했다. 그의 부인할 수 없는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롭지 않았다.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타인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일등, 인류가 아니면 어떤가? 다같이 함께 행복하게 살다 죽는 것이 더 정의로운 거 아닐까?

삼성은 물건 하나는 잘 만드는 똑똑한 집단이다. 삼성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빛과 어둠에 대해서는 지금은 잘 알 수 없지만, 어느덧 세계 속에 빛나는 삼성을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서 볼 수 있게 한 것은 사실이다. 세계 최대 가전, IT(정보기술) 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를 비롯한 글로벌 국제 전시회에서 접하는 삼성의 위상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서 '코리아' 하면 '삼숑'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국가대표 기업으로 변모했다. 이건희 회장의 덕이다. 어쨌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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