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 문장을 우선 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7. 10:37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만추(晩秋)인 오늘은 아침 기차를 타고 순천에 간다. 이젠 해남 땅끝 마을까지 걷기 프로젝트는 두 번 남았다. 다음 달에 여수 그리고 올 마지막 달인 12월에 해남 땅끝마을을 간다. 우선 기차를 타고 내려간 다음, 그 도시를 걷는다. 난 작년 이 때쯤에 순천(順天)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난 순(順)자를 좋아한다. 순리(順理)와 역리(逆理) 사이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산다. 오늘은 순리를 따른다. 그래 순천에 가는 것이다. 순천만 갈대 습지와 국가정원에서 마지막 떠나는 가을을 실컷 즐길 계획이다. 함께 맛있는 식사도 할 생각이다.

다음 화요일에는 소설가(아니 그는 소설 쓰는 사람이 더 좋다고 했다.) 김연수가 대전에 온다. 그래 그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주말에 읽고 있다. 오늘부터 화요일 아침까지 그의 글 쓰는 방식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공유하려 한다. 김연수 소설가와 내 글쓰기는 같은 방식이다. 소설가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빠르게 글을 적는 일로 새 소설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인공의 결핍과 욕망을 채워가다 보면 소설이 된다고 주장한다. 한 문장을 우선 쓴다. 그리고 거기에 디테일, 세부 묘사를 시작한다. 소설에서 세부 정보를 채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는 질투심이 강한 여자였다"를 쓰고, 이런 질문으로 세부 정보를 보태 나간다. (1) 그녀의 눈빛은 어떻게 생겼을까? (2) 그녀는 언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까? 이런 식으로, 소설 쓰기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다. 소설가의 글쓰기는 흐리멍덩한 문장 하나를 적고, 그 문장이 서사가 되도록 질문을 하고, 그 답으로 디테일을 만드는 것이다. 소설이 아닌 모든 글쓰기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렵지 않다.

그 다음 흥미로웠던 것이 그가 만든 이야기 공식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그에게 없는 것)/세상의 갖은 방해=고생(하는 이야기)", 내 방식으로 바꾸면, "욕망+결핍/방해=삶"이다. 즉 자기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욕망하며 투쟁할 때마다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살면서 욕망이 없다면, 이야기도 없다. 그리고 삶에서 결핍이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살면서, 방해가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꿈꾸고, 욕망하지 않으면 삶의 고생은 없다. 그러나 더 많이 원하고, 더 큰 방해물을 만나면 고생 이야기는 더 커진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최상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원하고, 또 원하는 세계를 꿈꾼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수록 더 삶의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인생 역시 이야기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상관 없다. 소설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든지, 새드 엔딩으로 끝나든지 상관없는 것처럼. 대신 얼마나 대단한 것을 원했는가 아니면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한 것이다. 사는 이야기가 계속 되게 하려면, 이 질문에 계속 답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출발시키는 엔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외부의 힘이 주인공에게서 뭔가를 뺏아갈 때이다. 구멍이 생기면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그 구멍을 메우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평상시에는 장점이라고 말할 주인공의 성격이 단점이 돼 문제를 일으킬 때이다. 이 경우는 나의 장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을 이끌 때,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깊어진다.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세상 일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다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나 불안을 이겨내고 타자와 공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모두들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자신부터가 여러 번 실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된다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뭐 라도 해보겠다고 나설 때 나온다. 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에만 유효하다. 제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용기가 될 수 없다.

그래 오늘아침도, 느린 기차, 무궁화호를 타고 멀리 남도 순천을 간다. 멀어져 가는 가을을 붙잡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을 만들 생각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지인이 카톡에 올렸던 것이다.

완행열차/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흠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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