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2. 11:24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가을의 한복판에서 어젠 월평공원의 갑천 길을 걸었다. 몇 년 전 자주 가던 곳인데, 여전히 좋다. 그런데 여기다 아파트를 진다고 한다. 그래 모여, 이 길을 걸은 것이다. 덕분에 가을, 잘 즐겼다. 식물에게 가을은 '맺음'의 시간인 동시에 '떠나보냄'의 시간이기도 하다. 제 몸에 꼭 붙들고 있던 잎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또한 애써 맺은 열매조차 망설이지 않고 떠나 보낸다. 저들은 매서운 겨울을 이겨낼 수도 없고 종 자체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림'과 '떠나보냄'은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향한 희망인 것이다. 옷에 붙어 있는 열매를 하나씩 떼어내 풀 숲에 내려놓으며, 우리도 저무는 가을과 함께 복잡한 머리에서 무엇을 버려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을 풀숲길을 걷다가, 아스팔트 포장된 길이 나오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온몸에 붙어 있는 열매들을 숲에 두고 온다. 그리고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가을의 소원/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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