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정신이 살아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 각자가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저녁은 피곤한 날이었다.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며 단순하게 살고 있는데, 어제는 오전부터 어려운 인문학 강의가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 늘 그리운 <예~~술>팀과 그 어려운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에 대해 공부하고, 피노 누아를 품종 와인으로 깊어진 가을을 느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내가 좋아하는 장 박사님이 오셔서 여러 가지 사유의 세계를 즐겼다. 미국 나파 밸리 지역 균형 잡힌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 와인을 마시면서 '찌질한 삶'부터 시작하여 '경계에 서는 삶", 마을대학 이야기 등으로 자정을 넘겼다.
오전에 있었던 인문학 강의에서 인문학은 그리스 정신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더니, 말은 쉽지요. 문제는 일상에서 실천이라고, 약간 '뜨악'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오늘 아침 마중물 이야기를 한다. 나도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길 겸해서.
인문 정신이 살아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 각자가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중물은 혼자 힘으로는 세상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하수를 마중하는 한 바가지 물이다. 유범상 교수의 『필링의 인문학』에서 배운 것이다. 필링 인문학은 나를 지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비판이자 실천을 의미 한다. 거기서 마중물은 이 실천의 의미, 방향, 내용을 그 은유 안에 담고 있다.
-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큰 변화를 만든다. 마중물은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모두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물이든 상관 없다. 그러려면 비판으로 깨어나 '자각한 시민'들은 비판을 공유하며 조직의 회원이 되어 '조직된 시민'을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조직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 마중물은 우리 가까이 어디에나 있다. 지역과 마을, 현장 곳곳에서 전문가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문제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정책 입안 가와 시민 교육가가 될 수 있다.
- 마중물은 어디에나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하다. 이것은 마중물이 항상 열려 있다는 말이다.
- 마중물이 버려질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러니까 권력에서는 떨어지되 공동체에는 묶여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권력에 밀착해 권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며, 다시 한 번, 나는 '시시한 삶'을 기억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시시한 삶'을 살기로 마음 먹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그런 생각은 김수영 시인을 알게 된 후이다. 그래 오늘 아침은 그의 시 <죄와 벌>을 우선 공유한다.
죄와 벌/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 시는 김수영 시인이 실제로 겪었던 일을 다룬 시이다. 김수영이 길거리에서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자기 우산대로 때려 눕혔다. 여편네를 후려 팬 것이다. 그러고도 남이 보는 것만 걱정하고 다음에 생각하는 것은 지 우산을 놔두고 온 것을 아쉬워한다. 그런 와중에도 아내를 때린 것에 대한 아련한 후회와 자신에 대한 조소가 담겨있다.
김수영의 아내 이름은 김현경이다. 그녀는 이대 영문과를 다녔고, 정지용에게 시를 배웠으며 프랑스 문학에 심취했다고 할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이 있었다. 김수영과 김현경의 처음 만남도 스승과 제자에 가까웠다. 그런다 연인이 되었고, 한국전쟁 전 1950년 30세 김수영과 결혼했을 때, 김현경의 나이는 25세였다. 결혼하고 터진 전쟁에 김수영은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강제 차출된다. 하지만 의용군을 탈출했던 시인이 이번에는 한국군과 유엔군에게 서울 집 근처에서 체포되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된다. 그러자 시인의 생사가 묘연해진 상황에서, 김현경은 시인의 선배인 이종구와 부산에서 살림을 차렸다. 시인은 1952년 12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 나왔는데, 김현경이 사라진 것이다. 후에 김현경과 이종구가 사는 곳을 찾아갔을 때, 김현경은 김수영과 같이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다가 1954년 김현경은 이종구를 떠나 다시 김수영에 되돌아 온다. 김수영은 김현경을 사랑하면서도 분노했고, 복잡한 마음으로 살았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초에 <죄와 벌>을 쓴 것이다.
'찌질한 삶'은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인가? 위인들이 보이는 삶의 고장 속에서 나오는 것일까? 찌질하다는 말은 틀림 말이다. 사전에서는 '지질하다'가 맞다고 한다. 사전은 "보잘것 없이 변변하지 못하다"라고 설명한다. 나는 '찌질한 삶'보다 '시시한 사람'을 살기로 늘 다짐한다. 사실 이젠 '돈과 성공만 외치는 'Big Me’의 시대에서 ‘Little Me’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코로나-19가 그 흐름을 더 세게 만들었다. '리틀 미'. 즉 '시시한 Me'를 유지하려면, 자존감을 잃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자기 과잉의 시대에 약간은 고전적인 자기절제와 겸손의 미덕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시시할지라도 '힘'을 빼고, 내 방식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다시 말하면,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실천을 일상에서 하는 것이다. 인문운동가가 추구하는 '인문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인문정신을 갖추면, 아파도 당당하다. 문제가 있다면, 대충 관념적으로 장난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정신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길은 아프다. 아파야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 아프면 죽은 것이다. 삶은 원래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힘든 데도 버티며 사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아픈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자꾸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면 강물에 휩쓸려 내려간다. 그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다. 왜? 죽은 물고기만 내려가니까. 우리에게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극복해야만 하는 현실, 순응해야만 하는 현실. 그런데 순응해야 하는 현실은 다 죽은 것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것이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당당한 것이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사랑을 한다.”(김수영<죄와 벌>) 진짜 인문정신을 가져야 누굴 미워하고 사랑할 수도 있다.
자기 스타일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게 살려면 고통을 감당하여야 한다. 나 스스로 주인으로 좌우지간 돌아야 한다. 팽이처럼, 나만의 스타일로. 나는 곧 없어질 존재이다. 그러니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문정신이다.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인문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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