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 운동가는 타인이나 사물, 혹은 사건에서 단독성을 포착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17. 09:08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2005)에서 “기하급수적 변화”라는 아이디어와 ‘특이점(singularity -기계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는 지점)'을 2045년이라는 주장을 했다. 특이점 이론에 따르면, 그 때 우리는 ‘지성폭발’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기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똑똑한 버전으로 스스로를 빠르게 디자인할 것이다. 커즈와일에 따르면, 우리는 더 없이 행복한 휴머니즘(transhumanism)의 기간에 들어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어지고 지구를 돌아다니는 초지능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 singularity가 인문학에서는 '단독성'으로 해석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자를 나는 '단독자'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하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사람은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반면, 지적 '부지런함'이란 단독자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따라하기'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 들어가 가능해지도록 '틈'을 벌리는 것이다. 견고한 벽에 '틈'을 내는 사람이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singularity는 들뢰즈의 개념이다. 한국어로는 '단독성'이라 말한다. 단독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성질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형이상학에서는 일반성(generality)과 특수성(particularity)을 구별하는 것이 핵심적인 작업이었지만 들뢰즈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반성 안에 포섭되는 특수한 것들끼리는 교환이 가능하다. 일반성과 특수성의 도식으로 보면, 모든 개체는 교환 가능하기 때문에 소모품처럼 소비되지만, 단독성의 개념으로 보면 모든 것이 교환 불가능하기 때문에 존중하게 된다. 인문운동가는 타인이나 사물, 혹은 사건에서 단독성을 포착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이것이 인문정신의 핵심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단독성이 잘 보호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이다.

난 어제 오랫만에 한 '단독자'를 만났다. 그래 막차를 탔다.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두 부류이다. 한 부류는 그를 생각만 해도 쾌적함이 올라와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생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부류는 그저 그렇다. 보면 좋고, 안 봐도 좋다. 대체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런 단독자는 시대의식을 포착하고, 포착된 시대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자각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사람은은 자신의 폐쇄적인 시선을 벗어나 시대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문제를 발견하려고 덤빈다. 어떻게? 대다수가 공유하는 관념에서 이탈하여 자신만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그런 호기심이 발동될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독립된 주체, 대체 불가능한 단독자라고 한다.

단독자는 대답하는 일보다 질문부터 시작한다. 최진석 교수에 의하면, "질문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자신의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라, 우리는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인 것이다.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이다. 반면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한다. 대답과 질문은 다른 차원이다.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다시 말하면, 대답은 기능의 차원이지만, 질문은 인격적인 문제이다. 질문은 궁금증과 호기심이라는 내면의 인격적 활동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도식이 가능하다.

'질문-독립적 주체-궁금증과 호기심-상상력과 창의력-시대에 대한 책임성-관념적 포착-장르-선도력(리더십)-선진국'.

선진국에서는 "너 참 독특하고 유일하다(Your are so unique.)"라고 칭찬한다. 이러한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을 근거로 자기 삶을 꾸리면 자기 주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만 생각하지 않는 윤리적인 삶이 필요하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더 좋은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해 집단지성에 기여해야 한다. 집단 지성을 높이는 방법은 우리가 사회 발전 방향에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 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뒤에서 비평만 하는 것은 멈출 일이다. 네 주변엔 비평가가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브랜던 비언의 다음과 같은 말에 속이 상할 것이다.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것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 없다." 매일 지켜보면서도 그걸 할 수가 없다면 슬픈 일이다.

시월은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때이다. 이젠 말만 하지 말고, 기생(寄生)하지만 말고, 기여(寄與)를 생각할 때이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시월은 시월의 생각만으로 골똘하다/나뭇잎은 생을 펄펄 날리고/사람들은 가슴마다 생을 주워담는다/저 잎새들을 슬픔이라 말해선 안 된다/아무도 저 낙하를 죽음이라 말해선 안 된다."

시월의 사유/이기철

저 내림이 죽음이 아니라는 걸까
길어 올린 주황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잎새들은 햇빛으로 몸을 씻는다
바람이 들판에 새 길을 내고
뿌리들이 땅 속에서 다친 발을 만질 때
흙들도 이제는 쉬어야 한다
하늘이 그 큰 원고지의 빈칸마다 파란 시를 쓸 때
단맛으로 방을 채운 열매들이
무거워진 몸을 끌고 땅으로 돌아온다
내년을 흔들며 떨어지는 잎새들
몇 천 번 화염에 데인 단풍의 불에도
산은 제 뼈를 꼿꼿이 세우고
사원은 고요함으로 그늘을 밝힌다
불타는 것을 절정이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의 빛깔인 저 환함
이제 영원의 모습은 추상이 아니다
나무들은 젖은 몸을 말리느라 등성이로 올라가고
짐승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익는 것이 전부인 시월
시월은 시월의 생각만으로 골똘하다
나뭇잎은 생을 펄펄 날리고
사람들은 가슴마다 생을 주워담는다
저 잎새들을 슬픔이라 말해선 안 된다
아무도 저 낙하를 죽음이라 말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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