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0월은 바쁜 달이다. 어제 내 동네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7명이나 나왔는데, 그동안 억압된 것이 10월의 좋은 날씨와 함께 분출되었고, 정부가 생활 속 거리두기 1단계로 낮추어 이곳 저곳에 나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기다리는 배철현 교수의 <월요묵상>읽으며, 내 삶을 점검한다. 그는 어제의 칼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부탁으로 우주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에서 600억km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눈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 극소의 점 '지구' 사진을 전송했다. 이 창백한 푸른 점이 우리가 아웅다웅 사는 인생무대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물이었다. 그 후 알 수 없는 신비로 육체와 정신을 지닌 인간으로 잠시 살다, 자신도 예약할 수 없는 시간에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작은 하나의 점인 이 지구에서 우리는 너무 아웅다웅 산다. 오늘도 할 일이 많다.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 3일 차의 주어진 일을 해야 하고, 마음 놓고 대충 살면 문제가 없지만, 아침마다 글쓰기를 한 이후, 난 <두번째 산>(데이비드 브룩스의 책이름)을 오르기에 바쁘다. 삶은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가 넘는 첫 번째 산은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지기를 내려놓는 일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을 오른다고 하니, 바빠도 마음이 흩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제의 칼럼에서 배철현 교수가 소개한 노예였다가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50-135년)의 말은 마음을 챙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조절할 것들이 있고, 우리가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만사에 대한 의견, 삶의 목적, 욕망, 혐오 같은 것으로 우리의 행위로 결정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은 재산, 명성, 권력과 같은 것으로 우리의 행위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명쾌하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큰 지혜를 나에게 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이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만사에 대한 의견, 삶의 목적, 욕망, 혐오 같은 것으로 우리의 행위로 결정하는 것들"이다. 나머지 돈, 명예 그리고 권력 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배교수도 이렇게 말한다."지혜는 이 둘을 구분해 조절할 수 있는 것들을 수련해 평정심과 행복을 찾는 것이다." 사실 살다 보면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고 일생 수고하다 십중팔구 씁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인생에서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사고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혹은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고 자체가 아니라 그 사고를 대하는 나의 태도다."
매일 아침 시 하나를 공유한다. 류시화 시인에 의하면,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마음 챙김의 소중한 도구이다." 그래 난 매일 매일 한 편 시를 골라 읽고, 공유한다. 우리는 끝없이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고, 땀 흘려 일해야 하고, 성취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호흡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호흡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가끔은 이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본래의 '나'와 만나기 위해서는,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것도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충분하다/데이비드 화이트
충분하다.
이 몇 마디 단어들로도 충분하다
이 몇 마디 단어들로 충분하지 안다면
이 호흡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호흡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이렇게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에 이렇게 열려 있기를
우리는 거부해 왔다.
다시 또 다시,
바로 이 순간까지.
이 순간까지.
류시화 시인은 <마음 챙김의 시>를 펴내면서, 이런 말을 소개했다. "카밧 진이 설명하듯이 '마음 챙김'은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미약한 숨소리일 뿐인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 주위에 있는 것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을 얻기 위한 힘이 아니라 그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두려움, 고통, 질병, 자연재해 등이 우리의 삶을 흔들 때 마음의 중심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이 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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