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나만의 서사: 와인 마시기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7. 18:59

나에게 와인 마시기는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 불"(이성복, <<극지의 시>>)이다. '맞 불'이란 산불이 났을 때 진행되는 방향의 맞은 편에 마주 놓는 불이다. 두 불이 만나 더는 탈 것이 없어 불이 커지도록 하는 게 '맞 불 작전'이다. 하나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임의의 다른 절망을 만들어 내는 거다.

그러면서, 내가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괴로움을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많이 마시면 몸이 괴롭다. 그러나 괴로움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와인을 마신다. 외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받는 정직한 거래가 와인 마시기이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다 보니, 와인 맛의 10%는 와인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이다. 우리는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취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에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는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우리는 취한다. 그는 내 외로움을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고 허허 웃으면, 우리는 그 맑은 표정에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