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왜 새로운 아파트들을 계속 짓는가?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5. 17:22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5일)

<대장동 스캔들>은 근본적인 질문이 빠졌다. <인문 일기>에서 가급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는데, 인문학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너무 많이 나오고, 인문학적으로 사유해야 할 사건이라 보고, 이 사건을 좀 깊게 들여다보았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이 스캔들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도시 개발 사업 성적표가 공개된 사건이며, 전국을 뜯어보면 이 것보다 더 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을 거라는 점이다.

이 스캔들을 요약하면 이 거다. 거대한 이익의 저수지를 사업 설계자와 한 줌의 민간사업자가 공유한 거다. 사업진행에 따라 '원래' 개발업자는 쫓겨나고, 법조계 언론 기자출신 김*,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등이 사업 지분을 차지했다. 재벌과 병원, 영화배우에게서 흘러나온 투자금은 막대한 수익으로 되돌아갔고, 민간사업자 인맥의 언저리에 위치한 정치인과 법조계 인사, 그 가족들이 영문 모를 이득을 봤다. 배운 사람들과 힘 있는 사람들이 여도 야도 따지지 않고 모여 그들만의 축재를 벌였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러는 사이 아파트를 분양 받을 처지가 안 된 원주민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는 거다. 그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개발이란 이름의 사회적 당위 앞에서 떠나야 했던 거다.

나는 늘 혼자 질문을 한다. 왜 새로운 아파트들을 계속 짓는가?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 선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인 가구나 늘어나 실질적 주택보급이 넉넉하진 않다고 하나 돈이 부족할 뿐 집이 부족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우리 아파트의 수명이 왜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가? 전문가들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재개발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우리 동네도 멀쩡한 다세대 주택을 고치기 보다는 뚝하면 부수고 새로 짓는다. 건물 수명이 짧은 것은 재건축 사이클이 빨라질수록 건설사와 거기 투자한 사람들이 부를 축적할 뿐만 아니라, 집주인들 또한 재건축으로 가치가 상승한 부동산을 보유하려는 욕심 때문이라고 본다.

목수정에 의하면, "개발 이릭을 차지하는 사람은 소수라는 사실이 비밀이 아니건만 불을 찾아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재개발이라는 종소리가 딸랑거리면, 사람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너도나도 개발 열차에 올라탄다'는 거다. 그의 말을 더 들어 본다. "부동산 개발이라는 지팡이는 휘두르기만 하면 유권자들의 표를 쓸어 담는 마법의 지팡이다." 이걸 외면할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개발 판이 벌어지면 쓸어 담을 수 있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막을 기득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40년간 어느 정부도, 부동산 망국의 길을 진정시키는 데 기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 둘 징검다리를 놓아 오늘의 사태를 만든 공법이다. 많은 정치인들과 기득권이 이 것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이젠 개발주의를 넘어설 때가 되었다. 오늘 공유하는 시어처럼, "머지 않아 떠날 그 날을 위해". 우리에게 여전히 개발이 필요한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야 할 때이다. 국민 모두가 고향을 잃도록 한 개발주의 사회가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 개발 이익을 잘 나눌 생각을 하기 전에 개발주의라는 도그마를 초월할 수는 없을까? 잠깐 살다 가는 게 우리네 삶인데…...

머지않아 떠날 그 날을 위해/홍윤숙

내가 지상을 마지막 떠나는 날은
꽃 피는 춘삼월 어느 아침이거나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불타오르는
가을 햇빛 속이면 좋겠다.

머리맡에 사랑하는 가족들 둘러앉고
부엌에선 한 생애 손때 묻은 놋 주전자
달달달~ 물 끓는 소리 들리고

그레고리안 성가 한 소절 잔잔히 흐르는 향불
사이사이 슬로~비디오로 돌아가는 한 생애 필름
간간이 끊어지는 흰 벽지 위의 예수님 고상 바라보며
스르르 문풍지에 바람 자듯 잠들면 좋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묵주 알 손에 쥐고 성모송 외우다
창호지에 저녁 햇살 지워지듯 그렇게 고요히 지워지면 좋겠다.

예수님이 보내신 천사의 손을 잡고
어둡고 긴 묘지의 터널을 지나
먼 산과 들을 건너 비로소 열리는 광활한 빛의 나라
애증도 이별도 생사고락도 다시는 없는 나라
주님 홀로 지키시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덧없는 것들 부귀영화 허영 따위 허물처럼 벗어 놓고
영원히 불변하는 혼 하나로 아버지의 집으로 가야한다.
한 생애 무거운 빛 죽음으로 청산하면
새로 떠날 영원의 나그네길 가벼우리라
그 길 함께 동행 하실 분이 계시니
더욱 천상의 여로는 따뜻하리라

머지않아 떠날 천국의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도 나의 지상의 삶은 분주하다.

우리 모두 생각을 바꿔야 할 때이다. 이 문제는 내일 좀 더 깊게 다루어 본다. 인문운동가로서 이 스캔들에 나타나는 인문학적 요소들을 이젠 살펴 볼 차례이다. 이 스캔들 때문에 언론에 많이도 오르내리는 말이 '화천대유(火天大有)'니 '천화동인(天火同人)'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말 때문에 동양 고전 <<주역>>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음과 양의 조합인 64괘를 통해 우주 만물의 근본 이치를 논한다. 천지의 일부인 인간이 '역(易)의 철학'을 배워 삶의 지혜를 구하라는 것이다. '역'은 변화이다. 천지인은 변한다. 그러니 성공에 자만해도 안 되고, 실패라 포기할 것도 없다. 조용헌에 의하면, <<주역>>을 바라 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이 3가지이다.

(1) 신탁서(神託書)와 점술이다. 점술은 왜 필요한가? 그만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만 가지고 하느님이 두는 바둑의 포석을 알기 어렵다. 신의 섭리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신의 섭리를 슬쩍 커닝이라도 하려면 신탁과 점술이 필요하다. 아무리 미신이라고 두들겨 패도 점술이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이다.

(2) 인격을 수양하는 수양서로 보는 관점이다. ‘까불지 말고 조심하고 겸손하라’가 주역의 일관된 메시지이다. 이 말을 듣고 실천하면 인생에서 크게 손해 볼 일 없다. 대부분의 책상물림은 이 두 번째 관점에서 본다.

(3)  단학(丹學) 수련의 관점이다. 주역의 64괘를 하나의 달력, 즉 캘린더로 인식한다. 이 달력 날짜에 따라 단전호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동계(參同契)’가 이 노선을 대표하는 책이다.

첫 번째의 점술적 관점에서 주역을 해석할 수 있으려면 신기(神氣)가 있어야 한다. 신기가 없으면 주역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별 소득이 없다. 헛방이다. 차라리 그 노력을 육법전서 읽는 데 투입하면 고시라도 합격한다. 신기는 무의식[藏識]의 출현이다. 누구나 신기는 각자 내장하고 있지만 욕심과 잡념이 무의식을 덮고 있어서 잘 나타나지 못할 뿐이다. 민족종교협의회장을 지냈던 한양원(1924~2016) 선생. 주역의 이론과 실전에 두루 능했던 인물이었다. 학문과 신기를 모두 갖춘 쌍권총이었다는 말이다. 통일교의 문선명도 한양원에게 주역을 배웠다. ‘화천대유’를 한양원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아마도 ‘화천대박’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수천억의 대박이 났다. 대박이 나니까 전직 대법관, 검찰총장, 특검까지 다 모여들었다. 돈 되는 곳에 전교 1등 하던 한국 사회 엘리트들이 다 모여들었다. ‘천화동인’은 천하의 인재들이 한마음이 되었다는 뜻이다. 대장동은 ‘뇌천대장’ 괘이다. 천둥·번개가 치는 ‘토르’의 점괘이다.

강수돌 교수에 의하면, 이 게이트는 천지자연을 부동산 상품으로 개발, 재벌, 은행 돈과 법조인, 특히 변호사들의 비호아래 거대 이윤을 얻는 개발자본이 천지 만물의 이치를 따져 인간 도리를 제시한 <<주역>>을 농락한 사건이다. 자본의 철학은 무한증식이나, 주역의 철학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역에 따르면 자본도 생로병사 한다. '원형이정'은 <<주역>>의 '건괘'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원(元)'은 으뜸 원으로, 시작함을 나타내고, 형(亨)은 형통할 형으로 번창함을 나타나며, 이(利)는 이로울 이로 유익함을 나타내고, 정(貞)은 곧을 정으로 바르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퇴계 이황의 <<천명도설>>에 보면, 나무(木)는 동쪽에 있고, 거기 원(元)이라 적혀 있고, 불(火)은 남쪽에 형(亨), 서쪽에 이(利), 북쪽에 정(貞)이라고 적혀 있다. 나무는 생명이 시작하는 봄의 원기(元)을 상징하고, 여름은 뜨겁게(火) 곡식과 열매가 성장(亨)한다. 가을은 서늘(金)해지면서 수확(利)하는 계절이고, 겨울은 검은 불(水)의 긴 잠으로 꿋꿋하게 버티는 계절이다.

"원형이정"은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가지 덕 또는 사물의 근본 원리를 말한다. 건은 "원형이정"이다. "원은 착함이 자라는 것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고,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고,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사랑(仁)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절(禮)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正義)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선비를 꿈꾸는 나는 이 네가지 덕(德)을 행하며, '원형이정"의 순환을 마음농사의 도구로 삼고 있다.

'화천대유'는 하늘(天)의 불(火), 태양을 의미하고, 대유(大有)는 크게 만족하고, 크게 얻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늘의 불인 태양이 밝게 타올라 세상을 비추게 되어 모두 만족하고 천하를 소유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 정정당당하게 천하를 소유한다는 것이다.

모두 다 좋은 말이다. 그래 최근 유행하는 말이 "화천대유하세요!"이다. 농담으로 어디 대학 나오셨어요? 라고 물으면, 충청도에서는 '화천대유'라고 답한다. '화천대유'에 대한 해석으로 '하늘에 붙어있는 밝은 해가 세상을 비춘다'는 의미를 나는 더 좋아한다. 더 나아가 '하늘의 도움을 받는 자가 천하를 소유하고 다스린다'라고 해석 되기도 하니, 대선 후보들은 이 말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듯하다.

'천지동인'은 <<주역>>의 13번 괘이고, 14번이 '화천대유'이다. '천지동인'앞의 괘가 '천지비(天地否)'이다. 이는 불통과 단절의 시기 뒤, 사람들이 만나 대의를 위해 우정과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다. 즉 사사롭거나 집안끼리 만나거나 천도를 어기면 안 된다. 뒤 이은 '화천대유'는 하늘 위에 태양이 솟은 괘로, 크게 형통함, 즉 풍족한 물질과 고른 나눔이다. 물론 이 형통함이 오래가려면 오만, 방탕을 멀리하고 품위, 겸손, 간난을 알고 나눠야 한다.

천지(天地)라는 공공재는 모두의 것이되 누구의 것도 아니다. 따라서 대규모 개발은 공영이어야 난개발과 독점화를 막는다. 두 번째 이 사건의 핵심은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듯, 은행, 재벌, 정치가, 검찰, 언론, 조폭 등 '천지동인'이 아니라. '이권동인'을 깨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개혁동인'이다. 개혁 대의를 위해선 민초들의 소통과 연대가 필수이다. 이 개혁동인은 검찰개혁, 언론개혁, 토지개혁을 제대로 해 천지인을 제자로 돌려놓아야 한다. 자본과 권력의 돈잔치에 대해선 '멈춤의 도'인 52번을 뜻하는 '중산간(重山艮)' 괘나 '때를 알고 물러남'을 뜻하는 33번 '천산둔(天山遯)' 괘를 참고할 만한 하다. 변하지 않으면 삶이 없다. '역의 철학'이다. 강수돌 교수가 인용한 피터 모린의 말이 답이다. "모두 가난해지려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다."

'대장동 게이트'에서 1조 원대 돈벼락을 맞은 업체의 이름이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화천대유'는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는 뜻이고, '천화동인'은 '잘못된 세상을 타파하기 위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동 세상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말 그대로 하면  대동 사회를 꿈꾸는 일이다. 대동사회에 대해서는 예기 예운편(禮運篇)에 자세히 나와 있다.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세계에서는 천하가 공평무사하게 된다. 어진 자를 등용하고 재주 있는 자가 정치에 참여해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함을 이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부모만을 친하지 않고 자기 아들만을 귀여워하지 않는다."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재물을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은 자기가 하려 하지만, 반드시 자기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간사한 모의가 끊어져 일어나지 않고 도둑이나 폭력배들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을 열어 놓고 닫지 않으니 이를 대동이라 한다." 그리고 대동사회를 이해하려면 <대학>>을 읽어야 한다. <<대학>>에서 말하는 대동사회라는 개념을 이해 하기 위해서이다.

대동사회라는 말은 <<대학>>에 나온다. <<대학>>에서 말하는 덕(德)은 구체적으로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의 실천과 습관화를 말한다. ‘인의예지신’의 덕목들을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그때그때에 알맞게 실천하고 또 습관화하는 것이 바로 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덕이 있는 사람’은 ‘인의예지신의 실천이 잘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래 "덕재신 德在新"이라 표현했다. 이 말은 ‘덕은 날로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자꾸 '진보함'이다. 탕 임금은 세수대야에 이 말을 새겼다고 한다.

하늘에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길이 있고, 땅에는 호수목금토(水火木金土)의 길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길이 있으니, 이 길을 제대로 걷는 것이 ‘덕(德)’의 완성이다. 이것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자연(自然)그대로의 길(Let it be,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걷는 삶이다. 좀 정리를 해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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