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5. 14:18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 나는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을 공유하고 싶다.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인간의 권리는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각자가 노력해서 각자가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모두의 권리를 자기의 권리처럼 추구할 때 비로서 실현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폭력적 언어행위는 결코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어령 교수님이 하신 말을 공유하고 싶다. "말과 경주하면 인간이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과 직접 경주하는 게 아니라, 말에 올라타야 이기는 거예요. 질문을 바꿔야 해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인간이 과연 올라탈 수 있느냐 (….)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겁니다."(이어령) 이런 고민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진영으로 서로 나뉘어 서로 틀렸다고 호통만 치고 있다.

이어령 교수님은 말과 달리기에서 이길 수 없으니 말을 올라타는 것처럼, 우리도 AI를 올라타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 말은 인공 지능을 만든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콘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노학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는 '말 위에 올라타 통제한다'는 것은, 언제 달려야 할지, 어디로 달려야 할지, 어떤 속도로, 어떻게 달려야 할지는 결국 '답'이 아니라 '질문'의 영역이다. 어쩌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일지 모른다. 여기서 인문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 함께 행복을 추구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 아픔을 함께 하는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노학자는 강조한다.

-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 다 함께 행복을 추구하고,
-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가을의 기도"로 바친다.

앞서 말한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처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관용(寬容)이다. 네이버의 국어사전은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또는 그런 용서'라고 정의한다. 프랑스어로는 '똘레랑스(tolerance)'라고 한다.  ‘너그러움을 의미하는 관용’이 서로 간의 차이를 덮어두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화합(和合)’을 강조하는 태도라면, 프랑스에서 ‘똘레랑스’는 차이를 더 도드라지게 강조하되 서로를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나는 똘레랑스의 개념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 나는 늘 이 문장을 외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단지 차이일 뿐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면,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다르다고 '욱'할 필요 없다.

독재정권하에서 고도의 압축성장을 이룩하며 효율성과 획일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다 보니 ‘다름’이 곧 ‘틀림’으로 간주되던 당시 한국사회에서, 홍세화가 한국에 소개한 프랑스 '똘레랑스' 개념은 사람들의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프랑스인들이 신봉하는 가치는 ‘톨레랑스’보다는 다양성, 프랑스 말로 ‘디베르시테(diversite)’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는 하지만, ‘똘레랑스’는 어디까지나 ‘디베르시테(다양성)’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톨레랑스’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 같다. 다양한 배경과 사상과 아이디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디베시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톨레랑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성 사회를 위해서는 똘레랑스가 전제되어야 한다. 아니면 획일성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톨레랑스’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특정 사안들, 가령 나치 추종과 인종차별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앵톨레랑스(intolerance)’, 즉 불관용을 단호하게 견지한다. 즉 상위의 목표인 다양성을 저해하는 것에는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가 촘촘해, 잘 이해를 해야 한다. '불관용(엥똘레랑스)도 단호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불관용 해야 할 것들이 여럿 있다.

프랑스 혁명 정신인 자유(liberte), 평등(egalite) 그리고 박애(fraternite)가 현대의 프랑스 사회에는 봉구(bon gout), 똘레랑스(tolerance) 그리고 연대(solidarite)로 구현되고 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해도(봉구),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똘레랑스), 호혜적 이타주의 세상(솔리다리떼)이 실현될 수 있다.

여름이 질투해, 가을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나지만, 어제 한 나절은 여름 같았다. 본격 가을이 오면, '새 바람'이 우리 사회에 불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내년 4월 15일까지는 시끄러울 것이다. 총선때문에. 난 우리가 새로운 대의민주주의, 아니면 선거제도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때라고 본다.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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