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독서는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수련입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 09:13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독서는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수련입니다."(최진석) 지난 7월부터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 제안하는 "책 읽고 건너가기"에 동참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달부터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내 연구실에서 함께 읽는다. 지난 달의 책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다 읽지 못해, 어제 새벽에 읽었다. 줄을 긋고, 빈 공간에 내 생각을 적었다. 왜냐하면 독서는 수련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10월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학창 시절에 읽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수련하는 마음으로 읽을 생각이다. "인간은 자기가 온전히 자기가 되는 순간 신성(神性)을 경험합니다. 자기 안에서 자기가 신이 됨으로서 그는 자신만의 신화를 일구는 주인으로 세계에 등장하지요." 이달의 책으로『데미안』을 선택하면서 최진석 교수가 한 말이다.『데미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이 문장을 최교수는 "나는 나로 살아야 존재의 완성을 경험한다는 확신을 알려주는 웅변"이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생이란 자신의 임무인 다이몬, 즉 천재성을 찾는 여정이다. 나는 그 다이몬이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신적인 어떤 특질이라면, 나는 이 단어를 인간을 한껏 고양시키는 인간 심성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신성'(神聖)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 "에토스 안스로포 다이몬"을 다시 번역하자면 "한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이 인생을 통해 수련한 결과로 도달한 신성 혹은 카리스마다"다. 인격이란 인간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그 사람만의 신성성을 발현하는 수련이다. 이러한 길에서 우리는 우왕좌왕하고, 좌절한다. 최 교수는 "방황하는 길 위에서 "너는 누구냐?'라는 환청에 시달린다면, 오히려 괴로워"하지 마라고 했다. 오히려 그건 병이 아니라, "신이 되어 가는 고단한 여정에 자기 스스로 내리는 축복의 종소리'라고 했다.

시월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세수"를 하고, 오늘 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비록 추석 연휴이지만, 내 일상을 늘 같다. 매일 아침 나는 일어나자 마자 이와 혀를 닦았다. 세수는 샤워할 때 했다. 이젠 습관을 바꿀 생각이다. 우선 세수는 할 생각이다. 물로 얼굴을 닦으면 새로운 하루를 얻는 것이다. 신선한 물에 헹구어낸 시선으로 또 다시 주어진 하루를 시작한다. 나희덕 시인은 이 시를 소개하면서, 세수는 "마치 하루살이가 어제의 죽음을 벗고, 또 다른 하루살이로 부활하는 의식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인은 어제는 씻겨 내려간 게 아니라 얼굴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 거라 말한다. 그 주름이 오늘 아침의 화두인 수련의 흔적이 주름이다. 아침 사진은 "책 읽고 건너가기"의 이미지이다. 내가 늘 산책하는 동네의 <탄동천>인데, 이 곳과 저곳은 다른 분위기이다. 건너야 경험할 수 있다.

세수/이선영

어제의 나를 깨끗이 씻어낸다
오늘의 얼굴에 묻은 어제의 눈곱
어제의 잠
어젯밤 어둠 어젯밤 이부자리 속의
어지러웠던 꿈 어제가 혈기를 거둬간
얼굴의 창백함을
힘있지는 않지만 느리지는 않은
내 손길로 문질러버린다
늘 같아 보이지만 늘 새것인 물
얼굴에 흠뻑!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늘엔 오늘 아침 갓 씻어낸 물방울 숭숭 맺힌 나의 얼굴이 있고
그러나 왠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지 않은가
어제는 잔주름만 남겨놓았고
오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최교수는 "지적 인식을 위해 지금까지 개발 된 것으로 독서가 최고"라 말했다. 책이나 좋은 글을 읽는 것이다. 최교수는 "지식과 내공을 동시에 잘 닦을 수 있는 것이 독서"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펼친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이나 산 책을 정말로 읽는 일은 다 인내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시간을 들여야 한다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요약하거나 마음에 닿는 글을 적으면서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것을 최교수는 '인격적인 단련'이라 한다. 이 번 달에는 그걸 '수련'이라 표현했다. 나는 그냥 '사는 훈련'이라 말하고 싶다. 그 훈련은 우선 시간을 들이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적인 수고를 하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나르( Pascal Quinard)는 독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아직 경험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은 어떤 곳으로 데려다 주는 마법을 부린다는 뜻에서, 독서를 "마법의 양탄자"에 비유했다고 최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소개했다.

최교수에 의하면, 더 나아간다는, 즉 진화(進化)는 용기로 빚어진다고 했다. 프랑스어로 '봉 꾸라쥐(Bon courage)'의 말 그대로의 뜻은 "용기를 내!'이지만, '힘 내!"란 말이다. 용기는 힘을 내는 것이다. 충청도 말로는 '욕보는 일'이다. 그건 용기를 내어 시도하고 시간을 들이며 인내심으로 힘을 내는 일이다. 용기가 힘든 것은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편안함을 박차고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하여, 들뢰즈의 표현에 따르면 탈주하여, 더 나아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일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키우고 강화하는 일로도 가능하지만, 그보다 더 많게는 아직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옮겨 가면서 일어난다고 최교수는 말한다.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본다. "모든 진화는 경험과 이해를 벗어난 곳으로 탐험을 떠나는 용기이다. 경험과 이해를 벗어난 곳은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무섭고 이상하다. 거기는 두려운 곳이다. 경험과 이해를 벗어난 곳으로 이동하자면 두려움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모든 진화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로만 일어난다."

더 나아지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갖고 있는 것을 자신의 정처(定處)로 정하고, 마치 선정(禪定)에 들 듯이 여기에 편안해 하고 여기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또 이것을 자신만의 진리의 텃밭으로 삼는 한 이것 다음이나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닿기 힘들다고 최진석 교수는 말한다. 장자가 말하는 '정해진 마음(成心)'에 갇혀, 이것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만 갖게 된다. 그러면 깊이 생각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지고, 사유가 아니라 감각에 빠지게 된다. 사유에는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을 최교수는 '지적으로 게으른 자'라고 말한다. 부지런한 자는 감각과 감정을 극복하는 지적인 태도로 사유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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