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힘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4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글을 함께 한다. 당시는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글을 썼다. 그날 아침 제목은 "우리는 혼자 있는 힘을 통해 자라고, 성숙한다"였다. 다음 주는 긴 추석 연휴 기간이 있다. 수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장 5일이 빨간 날이다. 정부는 너무 많은 이동과 만남으로 코로나-19가 다시 더 확산될까 봐 안절부절이다. 그래 나는 "혼자 있는 힘"을 기르는 주간으로 삼을 예정이다.
지인이 <뱅샾62> 서재에 갖다 놓으신 책 중에서 제목이 끌리는 책이 한 권 있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장은주역)의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이다. 표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카톡에 있던 말도 떠오른다. "홀로 설 수 있어야 함께 설 수 있다." 둘 다 새겨 둘 만한 문장이다. 표지 뒷면에는 이런 문장이 크게 쓰여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물론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혼자 있는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 있기를 두려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힘을 쏟는다. 사람은 혼자일 때 성장한다. 다른 이와의 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은 내 기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준에 끌려 다니기 쉽다. 내가 내 삶을 주인공으로 살려면, 혼자 있을 줄 알고, 혼자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나름대로 가져야 한다. 혼자 있는 고독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 고독이 뿜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존재한다.' 그러면 우리는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느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는 너무 남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고, 그만큼 고독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혼자있어야 내면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자아는 '참 나'와 '에고'로 나뉜다. '참 나'는 우리의 순수한, 때 묻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절대계의 나이고 에고는 현상계의 나이다. 이 에고는 생각, 감정, 오감이 구현되는 자아이다. 혼자 있어야, 우리는 이 '참 나'를 만날 수 있다. 에고는 늘 우리에게 결핍을 준다. 그 결핍의 대상을 바깥에서만 구하려 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참 나'에서 찾을 때 고독은 고통이 아니라 구원이 될 수 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슬픔이지만, 고독은 함께 있어도 느낄 수 있는 '혼자 있음'의 자각이다. 고독에서 '참 나' 자각을 하면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답게, ' 참 나'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각자 그렇게 살 때, 화엄세계가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 손으로, 우리 의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혼자 있어보면 '참 나'가 가르쳐준다. '참 나'와 상의하면 더 잘 가르쳐 준다.
우리는 '혼자'보다 '함께'가 좋다는 문화적 학습을 받아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생의 중요한 모든 전환점에서 겪은 일들은 다 혼자 해결했던 것들이다. 고독하게. 물론 함께 있는 시간이 혼자 있는 시간보다 더 즐겁다. 그러나 혼자 있어야 진정한 자신, '참 나'를 만날 수 있다. 융은 그 시간을 '그림자와의 만남'이라고 했다. 그 만남을 하면, 무의식 밑바닥에 숨기고 또한 잊고 싶은 상처들이 쌓여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상처들을 정면으로 만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아침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란 이름으로 한 편의 에세이를 쓴다. 오늘 아침 공유할 시는 구상 시인 <오늘>이다. 그러다가 약속된 시간이 되어, 나는 바로 세종에 있는 고향의 선산에 갔다. 사진은 오전에 형제들과 조카들이 함께 모여 벌초를 한 조상들의 산소이다. 하늘이 엄청 맑았다. 그리고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오늘/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의식은 무의식에 있는 그 상처들을 억압한다. 그러나 억지로 봉합된 그 무의식의 상처는 의식에게 반드시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혼자 있는 시간에 그런 기억들을 대면하며, 그 아픈 상처들도 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하면, 그 상처는 치유된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 자신과 대면하는 고독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고독한 시간에 만나는 나의 지난 실수들은 다 내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책임을 온몸으로 자신이 껴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의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에 따라.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는 고독한 시간은 우리 자신의 모든 가능성들이 아름다운 날개를 펴는 시간이 된다. 매주 일요일처럼, 오늘도 한 주간 흥미롭게 만난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를 몇 개만 공유한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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