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Ubuntu):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대전문화연대 창립 15주년 기념 후원의 밤>을 잘 마치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한 단어는 '우분투(Ubuntu)'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건국 이념으로 "네가 있으니 내가 있다"라는 말이다. 지금은 우분투가 컴퓨터 운영 체계의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리눅스 오픈 소스이다.
그런데, 우분투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인류학자 한 사람이 남아프리카 반투족 지역에서 실험을 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그들의 경쟁심을 알아본 실험이었다. 인류학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 한 바구니를 준비해서 저만큼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아이들에게 뛰어가서 제일 먼저 과일 바구니를 잡는 사람에게 과일을 전부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여기 아이들도 유럽의 아이들처럼 다투어 뛰어가서 제일 먼저 손을 대는 아이가 과일을 모두 차지할 것이라 여겼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뛰어가라는 신호와 함께 정답게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과일바구니 앞으로 간 아이들은 동시에 과일 바구니를 나뭇가지에서 내려 둘러앉아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이에 놀란 인류학자가 물었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왜 그렇게 과일을 나누어 먹는 거니? 내가 가장 빨리 뛰어 가는 사람이 다 가지라고 했는데?" 그러자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우분투." "그 말이 무슨 뜻인데?" '그건 우리가 함께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이에요.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함께 있어 내가 있다.' 어제 저녁에 이 '우분투' 정신을 체험했다. 아프리카 이야기를 하나 더 한다. 과거 아프리카의 타조 사냥이야기이다. 타조를 잡으려면, 타조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쫓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타조와 쫓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일정한 간격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하게 되는데, 쫓고 쫓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쫓기는 쪽의 긴장감은 커지기만 한다. 타조가 쫓기고 쫓기다가 간장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 도망가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뜨거운 모래땅에 처박는다. 사람들은 그냥 가서 꼼짝 않고 대가리를 박고 있는 타조를 잡아오면 된다. 타조들은 다 그래왔고, 또 다른 타조들도 그렇게 잡혀 죽었다. 그런데 한 타조가 다른 타조들을 따라서 머리를 처박지 않고 무리에서 이탈하여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쫓아오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일을 저질렀다. DNA에 박혀 있는 일정한 방향을 지키다가 돌발적으로 선회(旋回)하여 습관적이고 집단적으로 공유하던 방향을 혼자서 바꾼 것이다.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인간은 타조처럼 쫓기고, 세계는 인간을 쫓아간다. 그러니까 세계는 인간에게 항상 무엇인가 반응을 강요한다. 우리 삶은 모두 그 강요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응일 뿐이다. 선회는 도전이고, 여기서 필요한 것이 용기이고, 그 결과로 변화가 일어나면 새로운 문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적 삶의 시작은 과거의 답습(踏襲)이 아니라, 탈주하는 것이다.
내내 쫓기기만 해왔던 무리에서 이탈한 어떤 한 타조가 뒤를 돌아보고, 갑자기 이전에는 있어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반응을 시도했다면, 이것이 바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도전이다. 일단 되돌아보면(선회하면), 그 이전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시도될 것이고, 그것은 세계에다가 이전에 있어본 적이 없는 어떤 무늬를 그리게 될 것이다. 문화적 활동의 결과를 수용하던 타조가 주도적으로 문화적 활동을 하는 타조로 변해, 창의적인 타조가 되는 것이다.
어제 하루 종일 바빠, 나의 '페북'을 못 봤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난리가 났다. 제일 마음에 드는 글은 이호준 시인의 것이다. "나이도 얼마 안 된 분이 머리에 석회라도 들이부은 듯, 얼척 없는 소리를 자꾸 해대니 (…). 이제 본질은 조국이 아니에요. 개혁이냐 반개혁이냐의 문제, 즉 앞으로 한발자국이라도 나갈 것이냐 뒤로 물러서서 검찰이 망나니춤을 추는 나라를 만들 것이냐의 문제라고요. (…) 공안검사들은 거의 창조주에 가까웠어요. 간첩단 정도는 뚝딱! 만들어낼 실력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개인 하나 범죄자 만드는 게 어렵겠어요? 아니, 범죄자를 만들 필요도 없어요. ‘이런 이런 걸 수사하고 있다’고 적당히 흘리기만 해도 그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지요. 그것도 아니면 대충 얽어서 기소하면 되고요. 그러니 그들 눈에 힘없는 국민 따위가 사람으로 보이겠어요? 대통령도 우습게 아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다고요. (…) 기호지세(騎虎之勢)예요. (…) 풀어드리면,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달리는 형국이라는 거예요. 중도에 내리면 죽는다는 뜻이지요. 지금이라도 내리는 게 사는 거라는 걸 대체 모르는 거지요. (…) 회는 갈수록 굳어지니까요. 사실 별 기대도 안했어요. 그럼요. 소 귀에 경을 읽은 스님이 잘못이지 소가 무슨 잘못일까요. 부자증세를 해서 복지를 늘린다니까, 왜 세금을 올리느냐고 핏대를 세우는 서민들이 사는 나라인 걸요. 답답해서 써 본 글이에요. 나는 마당을 쓸러 나갈 테니 아저씨는 그냥 그렇게 짖으세요."
문화란 예술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의하는 모든 것이다. 문화는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이다. 이 문화에 대한 정의는 노르웨이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말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오늘 나는 또 "접는다". "접는다는 것은 밖으로 펼쳐졌던 마음을/안으로 들여앉히는 일/살짝 접어 두었던 마음은/다시 보고 싶은 페이지를 만드"는 일이다.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과 수고해 준 전 대표님 그리고 마음과 시간을 보내주신 운영위원님들에게 감사하다.
접는다는 것/정용화
누가 처음 종이에 날개의 무늬를 새기려 했을까
스물여섯 번의 바람을 접어 넣고서야
종이는 한 마리 새가 된다
밤새 길게 써놓은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넣을 수 있고
먼 길을 날아온 새들도 날개를 접어야
나뭇가지에 앉아서 쉴 수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향기가 피어나는 구절에 밑줄을 긋고
나비는 잠시 도시의 귀퉁이에서 날개를 접는다
접는다는 것은 밖으로 펼쳐졌던 마음을
안으로 들여앉히는 일
살짝 접어 두었던 마음은
다시 보고 싶은 페이지를 만든다
슬픔으로 접어 놓았던 마음에 그늘이 내리면
켜켜이 쌓인 어둠에서 모퉁이가 만들어지고
구석들이 생겨난다
고단한 새들의 날갯빛으로 저녁이 오고
하루를 접은 골목에 어둠이 고인다
구름도 사람이 그리운 날이면
슬그머니 다리를 접고 땅으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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