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5단계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난 주말 빛 좋은 시간에, 동네 수목원에서 찍은 이 사진을 보고, 떠오른 시가 류시화 시인의 <여행자를 위한 서시>였다. 좀 길지만, 시를 읽으면 내 일상의 어휘 사전이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나를 어떤 미지의 세계로 데려간다.
여행자를 위한 서시/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지금 우리는 모두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 이 감염병이 사라지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문가들의 예측은 그렇지 않다. 오래전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인류생존의 최대 위협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병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지난주 다시 한번 성급한 인류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아무리 빨라야 2022년이 돼야 종식된다는 예측을 했다. 우리는 이런 소식을 듣고 불안과 답답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이런 심리적인 불안정이 우리의 일상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 불안 속에서, 나는 지난 주에 K-방역의 주역이신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 내과 이재갑 교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거기서 현실적인 답들을 나는 보았다. 그것들을 공유한다. 그는 인터뷰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민은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해 나가야 해요. 예전처럼 클럽에 가고 주점 가고 교회 가고, 다시 돌아가면 문제가 터집니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로 살아야 해요, 행동 반경을 줄이고, 내 바운더리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버티지 말고, 삶의 방식을 바꾸세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ker-Ross)가 1969년에 쓴 『죽음과 죽어감』에서 사람이 죽음을 선고 받고 이를 인지하기 까지의 과정을 다음의 5단계로 구분 지었다. "부인(denial)-분노(anger)-협상(bargaining)-우울(depression)-수용(acceptance)"이다. 이를 '죽음의 5단계'라 하지만, '분노의 5단계'라고도 한다. 이 모델은 사람이 죽음과 같은 엄청난 상실을 겪을 때 보이는 심리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도 이런 심리적 단계를 우리에게 주었다.
1. 코로나19같은 전염병이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까지 창궐하여 파탄내지 않을 거라는 부정
2. 국내 확진자 급증에 따른 분노
3. 이후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과의 타협하고 협상
4. 전 세계를 잠식한 인류사적 전염병의 창궐에 대한 우울
5. 이젠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대면(컨택트, contact)의 세계가 비대면(언택트, untact)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수용. 비대면이라 말이 싫다. 안전 대면, 위생 대면 등이 좋다고 본다.
이재갑 교수도 이렇게 말한다. "환자가 병에 반응하는 단계가 있어요. 처음엔 화를 내죠. 그 다음엔 이겨 내기 위해 노력하고요. 그 다음 급속도로 우울해지고 마침내 인정하고 수용하게 돼요. 전 국민이 그 단계를 겪고 있어요." 위에서 말한 사람이 죽음을 선고 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의 5단계와 같다. 그래 이재갑 교수의 이 말에 나는 동의한다.
"역설적이지만, 체념하면 답이 나와요, 한 달 간다면 이대로 버티잖아요. 2~3년 간다는 걸 알면, 그제야 인정하고 무언가를 하죠.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버티지 말고 바꾸라고 해요, 밀레니엄은 2000년이 아니라, 2020년에 시작됐다고요,"
까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고 있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이 제안하고 있는 "책 읽고 건너가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최교수는 "고급 쾌락을 경험"하는 것이라 했다. 책 읽기는 고급 쾌락이다. 최교수의 말처럼, 나는 까뮈가 쓴 "한 대목 한 대목에서 사유의 높이"를 즐기고 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있으시다면, 좋은 정보를 공유한다. 오는 9월 27일 일요일 저녁 7시에 유튜브 채널 "새말새몸짓"을 통해 최교수와 개그맨 고명환이 벌이는 <페스트>에 대한 수다 판을 만날 수 있다. 원래는 23일 별마당도서관에서 계획되어 있었는데, 바뀌었다. 10월에는 어떤 책이 정해질지 모르지만, 동참하면서, 별마당도서관이나 함평에 가는 이벤트를 할 생각이다.
까뮈가 주장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하면,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산다는 것, 그것은 부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다. 부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은 먼저 부조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부조리란 "세계, 그 안에서의 삶이 가진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부조리, 즉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앞에서 자살은 문제의 소멸일 뿐, 해결이 아니다. 까뮈는 그 문제 해결은 반항이라고 했다. 여기서 반항은 "사막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다. 어떻게? 삶과 세계의 무의미성, 곧 부조리 앞에서,
▫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 구원을 호소함 없이 사는 것
▫ 자살로써 회피하거나 기권하지 않는 것
▫ 쓰라리고도 멋진 내기를 지탱하는 것, 반항이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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