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대화를 잃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이나 좀 긴 글들을 읽지 않고, 또 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20. 19:50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정말 속절없이 시간이 흐른다. 코로나-19 확진자를 알리는 문자와 안전 안내 문자만 수시로 받다가 9월도 다 지나간다. 그래tj 나는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이 제안한 "책 읽고 건너가기"의 9월 책 까뮈의 『페스트』를 오늘 다 읽을 작정이다. 나는 대학 시절에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흥분했었다. 아마 그 사건때문에 나중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어제는 "책 읽고 넘어가기"(우리마을 10대학 주관)에서 코로나-19의 팬데믹 이후의 세상에 대해 토론을 하였다. 마치 페스트 전염병으로 중세가 문을 닫고 르네상스가 시작된 사건을 나는 거의 30분 이상을 설명했다.

최진석 교수는 까뮈의 『페스트』를 "역사적 사실을 철학의 높이에서 포착하여 문학적으로 정련한 글"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철학적 높이"에 방점을 찍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들이 그 높이가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은 사유를 하지 않는다. 그건 할 말이, 즉 자신의 견해가 없거나 사유의 시선이 낮기 때문이다.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그저 스마트폰에 집중한다. 언젠가 소설가 백영옥은 심리학자 셰리 터클의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에 나오는 '퍼빙(phubbing)'이란 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휴대폰의 '폰(phone)'과 '무시함'의 '스너빙(snubbing)'을 합성한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냉담할 정도로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태도를 뜻하는 신조어다. 연애를 하는데 더 외롭다는 얘길 듣곤 한다. 연인의 대화가 둘만의 것이 아닌 넷 혹은 그 이상의 형태로 분절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페에 마주앉아 대화하는 커플 중 절반은 상대 얼굴이 아니라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렀다. 그래도 한 마디 더 해본다.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도, 요즈음의 젊은이들처럼, 대면이나 전화를 직접 하는 것보다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대화를 한다. 대면보다 온라인 의사소통을 선호하는 요즘 현상과 관련이 깊다. 온라인 의사소통은 자신을 더 잘 통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편집과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상태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상태'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마주 앉은 사람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지만 컴퓨터는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 교제는 '우정을 요구하지 않는 우정'이라는 말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인간관계는 관심을 쏟고 처지를 바꿔 생각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대화를 잃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이나 좀 긴 글들을 읽지 않고, 또 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철현 교수는 "교육의 내용은 생각하기(思), 말하기(言), 읽기(讀) 그리고 쓰기(作文)"라고 말하며,  "이 네 가지 중 우선 순위를 정하자면, 읽기와 쓰기가 우선"이라고 했다. 언뜻 보면, 인간은 생각하기와 말하기를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터득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하기와 말하기는 그 인간의 수준을 결정한다. 높이가 다르다는 말이다. "생각하기와 말하기는, 저절로 터득 되는 기술 같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의 수련을 거쳐야만 획득되는 궁극의 무기이다."(배철현)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다가 여기까지 왔다.

오늘 아침 시는 천양희 시인의 <들>이다. 오늘 오후에는 딸을 데리고 들에 나가고 싶다. 나가서 가까이 다가온 가을을 먼저 만날 생각이다. 아침 사진은 최근에 찍은 달개비(닭의장풀) 꽃 사진 20여 개중 가장 예쁜 것을 공유한다.

들/천양희

올라갈 길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
더 넓은 들

아침 시를 읽고, 질문해 본다. 소유냐 존재냐(Have or Be/avoir ou etre)?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근데, 그걸 얻었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만족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목표를 찾아 나서는 첫 마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소유는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추구한 바를 즐기며 맛보는 것이다. 목표가 누리는 것이라면 과정자체도 당연히 누리고 즐기는 것이다. 목표가 설령 달성되지 않아도 또 달성되어도 매일 추구하는 과정을 우리는 즐겨야 한다. 목표를 끝내 달성하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도 날마다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갖고 즐겨야 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형용사가 뒤따르는 Be형 삶을 살도록 하자. 나의 정체성은 형용사의 객수가 말해준다. 뭔가를 가져야만 하는 'have+명사' 삶의 드라이함은 'Be+형용사' 삶의 무한성과 다양성이 주는 기쁨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그래 요즈음 동네에서 벌이고 있는 마을 공동체 <우리마을대학>일이 즐거운 이유이다.

1년 전에 만든 <인문운동가의 10가지 삶의 지침>을 오늘 아침 다시 읽어 본다.
1. 욕구를 만족 시키는 삶보다는 의미를 채우며 좀 희생하는 삶을 살고, 그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3:2:2로 일만 하지 말고, 활동(취미 또는 공동체를 위한 일)하고 쉰다. 3일 일하고, 2일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2일은 나를 위해 쉬며 취미 생활을 한다. 일이 너무 많이 생긴다.
2. 물건을 소유하려고만 하지 말고, 존재로 공유하고, 단지 바라보는 것으로도 만족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3.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부담 없이 관계를 즐긴다. 그래야 자유롭다.
4.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내면을 충만하게 채우려 하며,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자제한다.
5. 얻는 일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주려는 일에도 시간과 물질을 내 놓는다.
6. 인생은 유한한 나그네 길이다.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그 길 위에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간다.
7. 길에서 만난 사람 중에 어리석은 자를 만날 바에는 차라리 혼자 간다.
8. 남을 힐난하기 전에 나 자신의 허물과 게으름을 본다.
9. 눈으로 보이는 것과 속된 것에 탐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천박(말이나 행동이 상스럽고,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을 경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10. 자기 분수를 파악한다. 그건 나는 누구인가를 아침마다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일이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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