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꽃'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18. 09:31

9년 전 오늘 글입니다

'참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추석의 긴 연휴 마지막 날이다.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과 가게만 왔다갔다 했다. 물론 추석 전날과 추석날은 형님 댁이지만 내 고향인 장기에 다녀왔다. 좋은 휴식을 취했는데, 영 찜찜하다.

생각으로는 비우기로 하면서, 책을 읽으며 잔뜩 채우기만 했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딸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딸의 시간에 맞추자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넉넉한 시간에  평소에 읽지 못하던 소설을 읽었는데, 왜 시간만 낭비한 것 같은가? 성찰하지 않아서 그렇다. 흐린 일요일 아침을 사유에 바친다. 끝나면, 주말농장에서 땀을 좀 낼 계획이다.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를 읽었다. 내가 만나는 누구든지 '꽃'으로 보지 못하면서 책을 읽으면 뭐하는가? 사람 꽃.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만으로도 '꽃'이 되어었으면 한다. 나부터. 꽃은 누구에게 향기를 주고, 그 향기가 좋아 다가오게 한다. 사람도 서로에게 향을 주고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부터. 그리고 <정글만리> 1을 다 읽었고, 2를 읽는 중이다.

내 불안의 밑바닥에는 돈이 문제이다. 일주일이 매출 제로로 날라가면, 갚을 돈들이 부족하다. 걱정하지 말자고 머리로는 생각하며, 가슴으로는 걱정을 한다. '괜찮아! 몰라!' 하고 참나가 말해주는대로 살면 되는데......

연휴 내내 은근히 부자를 부러워 했다.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어 여행을 못가는 내 신세를 한탄한 것인가? 젊은 시절 원없이 세상을 돌아다녔는데, 뭘 부러워 하는가? 난 이번 연휴에 직접 중국을 다녀오지는 안했지만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으며 중국을 다녀왔다. 시안-당나라의 수도로 당시에는 장안이라고 했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로 부자에 대한, 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다.

여러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 상위 1%의 부자로 살아가려면 약 10억 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 돈은 지난 해 직장인 평균 연이 3170만원이니까 32년을 한푼도 안 쓰고 꼬박 모아야 벌 수 있는 돈이란다. 그래서 한국의 100대 부자 가운데 84명이 상속 부자이인 것처럼 한국에서 부자가 되려면 유산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10억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은가?"하고 물었더니 초등학생 17%, 중학생 39%, 고등학생은 반이 넘는 56%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현실이다. 어제 TV로 <베테랑>이라는 한국영화를 봤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이런 정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정의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가야 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정의 교육으로 가르쳐야 한다.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돈있다고, 정의를 무시하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한겨레신문에는 '내 마음이 쉬어가는 곳, 휴심정'이라는 코너가 있다. 나는 시간이 넉넉하면 그 곳을 방문한다. 거기서 황창연 신부님의 칼럼을 만났다. "행복을 팔아 돈을 산 나라". 칼럼의 진짜 제목은 "기적을 이룬 대신 기쁨을 잃은 나라"이다.  이 제목은 한국에서 머물렀던 영국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가 쓴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를 출판사가 붙인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뤄낸 엄청난 경제적 기적 뒤에 가려진 믿기 어려운 온갖 부작용과 희생을 빗댄 제목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돈을 얻은 대가로 인간이 누려야 할 진짜 행복을 많이 놓쳤다. 경제적인 기적을 이루어 풍요롭게 살게 됐지만,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돈이라면 국민의 안전(세월호)도, 생명도, 나라를 지키는 국방도 엉터리로 처리하는 우리나라이다.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삶의 기쁨이 돈보다 먼저인 나라로.

많은 사람들이 온통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시름시름 앓고 있다. 나도 그런 부류 같다. 돈은 많지만 사는 보람이나 기쁨이라곤 전혀 없는 인생을 아무도 원하지 않을텐데. 나도 진짜 삶의 기쁨을 더 원한다.

인생의 목표를 돈 버는 일에만 두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 슬프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행복이다. 그러기 위해서 '찰나'를 사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그들은 순간을 산다. 울다가도 곧바로 다른 것을 찾아 즐거워 한다.

영화 <아저씨> 명 대사가 생각난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오늘을 사는 사람을 이길 사람 하나도 없다고 생각된다. 그때 빠지면 안 되는 생각이 있다. 이것 때문에 영성지수가 서로 다르고, 인격의 높낮이가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보람있는 일을 하고, 구체적으로는 유교식의 '인의예지신'을 실천하거나 불교식의 '육바라밀'을 행하면서 인성을 고양시켜 우주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자연의 이치처럼 때가 되면 후회 없이 퇴장하는 것이다. 지난 것은 잊고, 다가올 미래에 두려워 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삶을 위해서 조선 선비들은 '거경-궁리-역행'을 실천했다. 고려 양반들은 불교식으로 '계-정-혜'를 실천했다. 이것을 현대식으로 하면, '참나 각성- 내 안의 양심을 깨닫는 선정'과 '아집과 무지를 없애는 지혜 계발 함께 참나와 함께 결정'과 '참나의 뜻대로 행동한다. 그러면 습관을 교정하며 좋은 카르마를 쌓는다. 다음에 다시 잘 정리할 기회를 갖고 싶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각오하며 하신 이야기, 영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 부분에서 나는 "이런 깨달음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조현 기자의 옛 칼럼을 다시 읽었다. 나만 열반에 들면 무엇하나? "세속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해 일신이 출세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과 같을 것이다. 중생 위에 군림하는 재미가 중요한가? 부처는 '요익중생',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기 위함'을 위해 고해바다로 나왔다. 우리의 선조인 환웅은 우리에게 '홍익인간'을 가르쳤다.

아집(욕망), 무지(편견)로 세상을 보며, 부자와 권력자만 사랑스럽고 약자는 싫어질 때가 깨달음이 작동하여야 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추구해야 할 가치는 따로 더 있다.

- 장애인을 위한 복지
-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건강한 생태계
-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
- 보존해야 하는 문화유산
- 존중받아야 하는 삶의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