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아이'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13. 17:19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 사회의 아이들과 관련된 지난해의 각종 통계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 가족>에 보았다. 좀 공유하고 싶다.

* 2016년 출생아 수는 인구 통계 작성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 같은 기간 동안 302명의 갓난 아기가 길바닥과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 같은 기간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334명, 거의 하루 한 명 꼴로 아이를 버리고 해외로 보낸 셈이다.
* 영유아에 국한하지 않고 18세 미만의 아이들로 시야를 넓혀보면 부모에게 버림받아 시설, 위탁 가정 등으로 간 아이들은 4,503명, 하루 평균 12명 이상이었다.
* 같은 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아이는 한달 평균 세 명 꼴이었고,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경우는 하루 평균 51건이었다.
* 아동 학대의 80% 이상은 집에서 일어났다.
* 같은 기간 시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고를 찍었다.
* 한국 남성이 집에서 자녀와 함께 보낸 시간은 하루 평균 6분에 불과 했다.
* 육아휴직을 한 여성 중 43%는 복직 1년 안에 사표를 냈다.

통계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우리 사회는 참 이상하다. 왜 그럴까? 한 마디로 그 이유를 말하기 힘들다. 우선 생각 드는 것은 부모들이 자녀를 소유물로 대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아이'이다. 그저 작을 뿐 성인과 다르지 안은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초대받아 성인과 종류만 다를 뿐인 불안을 견뎌내야 하는 어린 생명체이다.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모든 아이들은 자율적 인간, 공감하는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우리는 바란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제도의 개선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위계적 질서를 걷어내고,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타인과 공감하는 태도의 변화, 일상의 문주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작가는 4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이상한 정상가족을 살핀다. 첫 번째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살핀다. '내 것인 너'를 위한 친밀한 폭력이라며 행해지는 체벌 문제, 과보호 아니면 방임으로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문제,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이상한 용어 문제, 친권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지적 등의 문제를 말한다. 나는 내 머리에 작은 전구가 켜졌다. 두 번째는 가족 바깥,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 가족으로 산다는 것의 문제를 다룬다. 미혼모는 있는데, 왜 미혼부는 없는가> 왜 해외 입양을 하는가? 한국에서 피부색이 다른 가족이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한다. 세 번째는 누가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규정하나를 질문한다. 왜 우리 사회는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만들어 신념이 지배할 까도 묻는다. 네 번째는 대안을 말한다. 가족이 그렇게 문제라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한다.

다음 한 주 동안 이 이야기를 공유할 생각이다. 이 책은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 본부>가 제13회 "우리대전같은책읽기"로 선정된 것이다. 나는 그 본부에 메일로 10권의 책을 부탁하여 <우리마을대학> 책 읽기 모임 회원들에 나누어 주었다. 각자 읽은 후, 다같이 토론 하기로 했다. 나도 비정상 가족이다. 상처를 하고, 딸과 단 둘이서 산다. 그러나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나는 딸과의 관계를 '연대정신'으로 푼다. 단순히 아버지와 딸의 위계적 질서를 무너트렸다. 어린 여자 아이와 나이든 남자 어른이 공존하는 길을 찾으며 산다. 서로가 부족한 것을 메워주려는 정신으로 협력하며 살기 때문 같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 일주일동안 만났던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도 천양희 시인의 것이다. 사진은 내가 즐겨 걷는 산책 길이다, 거기에만 미루나무가 있다. 올려다본, 훤칠한 미루나무 끝 하늘에서 전생의 환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벽과도 같은, 깎아 세운 것 같은 적막과 딱 맞닥뜨리는 순간 생의 비의(秘義)를 보았다. 생명이 힘차고 왕성하게 자라지만 때때로 적막 산중 같기도 한 여름의 시간이 지나갔다.

벌새가 사는 법/천양희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 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주변에 책일기를 권하면, 안 읽겠다고 한다. 이유를 모르겠다. 습관의 문제이다. 벌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한 주간 여러 글을 읽으며 한 주간 모아 둔 짧지만 긴 여운의 이야기 들이다.

1. "땅에서 하는 대로 하늘에서도 응답하리라." <가톨릭프레스>라는 신문에서 만난 이기우 신부님의 글 부제목이다. 제목은 "정체성에서 관계성에로 나아가 또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기". 강요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비대면이 일상이 된 사회일지라도, 관계성의 중요함 강조하는 글이었다.

사로 바오로는 로마로 선교를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율법은 죄를 짓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계명이지만, 이 율법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율법이 완성됩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씀은 일찍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은 땅에서 하는 대로 하늘에서도 응답하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룩하는 일에 제자들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주신 예수의 방점은 죄나 잘못을 용서하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한 일을 하려는 제자들의 기본 지향을 믿어 주는 데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가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교회는 정해진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한 일을 공동으로 지향하며 두 사람이 모이면 그곳도 교회로 예수도 함께 하시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위의 예수의 말은 공동체에 해로운 죄를 막아내는 데 있어서 만이 아니라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선한 과제에 전폭적인 위임을 주셨다고 봐야 한다. 공동체 속에서 관계성으로 선행을 하는, 즉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면서 함께 하라고 하신 말씀이라 본다. 비대면이 전부는 아니다. 생활 속 거리를 두지만, 마음의 거리는 좁혀야 한다. 이어지는 글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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