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누가 부자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13. 10:13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아무 일정 없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하루 종일 보내고 싶어, 조용히 이 책 저 책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딸이 한가위인데 먹을 것 좀 사러 나가자고 해서 동네 쇼핑몰에 갔다. 새로운 풍습이다. 집에서 전을 붙이기 보다는 전을 사갔다. 우리도 좀 사보려고 기웃거렸더니, 어떤 한 전을 파는 집에는 200m 이상 줄이 서있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성실한'  떡집 문에는 일찍부터 "송편 품절"이란 글이 붙어 있었다. 다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좋은 재료로 일관되게 품질을 유지하는 집들은 명절에 '대박'이다.

오늘은 한가위 아침이다. 나는 지난 설 명절부터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말한 것을 올 올해 추석에도 실천한다. 그는 최대한 평소처럼 보낸다고 한다. "저희 가족은 차례는 지내지 않기로 하고, 명절 즈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끼리 자기 방식대로 만나고 있죠.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죠. 그런데 주변에서 명절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은 못 봤어요. 부모님, 친지는 대규모로 떼 지어 다닐 게 아니라 각자 보고 싶을 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례를 없애지 못하는 집안도 있고 각자 처지가 다르지만, 제가 일반적으로 권하는 건 만화를 보며 플랭크나 스쿼트를 하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잘 쉬고 체력을 보강하란 말이죠.”

나는 평소에 읽고 싶은 글을 정리하며 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야 내 생각이 된다. 나는 긴 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배철현 교수의 글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러면 내 생각이 명료해 진다. 어제는 유대교, 기독교, 예루살렘 등 잘 몰랐던 명쾌한 그의 글을 읽었다. 그러다 덤으로  늘 배우는 것이 삶을 성숙시키는 것이란 점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대학을 나와 존경을 받을 것 같지만, 말과 행동이 정연(整然)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하대(下待)하는 사람은 실제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배움은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제 행위로 반복하여,  자신의 습관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운 사람은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금씩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정돈되어 있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다. 그런 사람이 남에게도 친절하다.

기원후 2세기 벤조마는 탈무드를 해석한 <선조들의 어록> 4.1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가 지혜로운 현자(賢者)인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누가 강한 권력자인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사악한 충동을 제어하는 자이다. 누가 부자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기뻐하는 자이다. 누가 존경을 받을 만한 명예로운 자인가? 자신의 동료들을 존경하며, 타인을 명예롭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선조들의 어록>에서 우주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원칙 때문에 유지된다고 하는 것도 정리가 되었다.
▪ 토라(torah): '율법 경전'이면서 '길'이란 의미이다. '경전'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우리는 '경전'을 읽어야 한다. 여기서 '길'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도(道)'와 같은 것 같다. 배철현 교수는 '길'에 대해 두가지를 덛붙인다. (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기에게 유일하고, 자신만의, 즉 자기 삶을 자신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길'이 있음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매 순간 발걸음이 닿는 길이 바로 자신의 '목적지'라고 인식하며,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2) 종교적인 '죄'는 자신이 가야할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안다 할지라도 그 길에서 벗어나는 행위이라고 한다.
▪ 아보다(avodah): '노동'이면서 '예배'란 의미이다. 이 단어도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노동', 아니 자신이 하는 일이 신에 대한 경배로써 '예배'란다. 그래서 히브리어 '아보다'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서비스(service)란다. '아보다'는 다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이웃이나 낯선 자를 위해 하는 일이나 노동(서비스)은 바로 신에게 하는 것과 같다. (2) 자신이 하는 일을 신을 위해 하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삶의 원칙이 되기도 한다. (3) 서비스라는 말은 낯선 자를 신처럼 섬기라는 윤리적 명령이기도 하다. 일이 신에게 드리는 예배일 수 있으며, 이웃에게 봉사는 길이 되는 것이다.
▪ 헤세드(chesed): '변하지 않는 어머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의미이다. 어머니처럼,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의 둘레를 확장하여 타인을 자신처럼 아끼는 마음을 지니라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비슷한 말 같다.

위 세 가지 원칙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깨달음, 경전을 읽고 자신의 길을 깨닫는 원칙 토라)와 자비(헤세드)에다 일상에서의 실천을 강조하는 아보다가 덧붙여진 원칙 같다.

이렇게 살다가, 때가 되면 나는 내 흔적들을 접고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나는 나의 복제품을 이 세상에 더 남기지 않고, 그냥 접고 떠날 것이다. 평소에 자주 만나지 않고, 명절에 만난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즉 내 정체성보다는 내 근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가 아니다. "결혼할 거니?' 묻는다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로, "늘그막에서 외로워서 그런다"고 말하면, "외로움이란 무엇인가?"로 대답하면, 그 '오지랖'들을 몰아내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김영민 교수에게서 배운 것이다.

접는다는 것/권상진

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
접혀진 자국이 경계같이 선명하다

한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하다

*홍상수 감독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를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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