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거대한 태풍의 눈에 들어선 돛단배와 같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12. 12:29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강의를 마치고, 밤 10시 10분차를 예매했는데, 한가위 연휴 전날이라 고속버스가 지각을 해 겨우 10시 50분이 되어서야 차를 탔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뒤엉켰지만, 대부분이 젊은 이들이었고, 매우 질서 있게 참아냈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읽었다. 희망이다. 소리치지 않고, 조용했다. 가끔씩 외마디 소리가 났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기 차례를 잘 기다렸다. 집에 도착하여 침대에 누우니 새벽 2시였다. 힘들지는 안 했다. 버스 안에서, 레슨 받고 있는 성악 곡을 여러 번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다음 주에 강의 할,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리뷰를 정신 반, 수면 반으로 들었다.

그 때문인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어쩌면,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눈을 뜬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오전에는 우리 <인문학 팩토리> 커뮤니티에서 예정에 없던 영화 한편을 함께 보았다. 도미닉 쿡 감독의 <체실 비치에서>였다. 돋보이는 영상미가 매력적이었다. 오랜 파도에 닳은 자갈들이 구르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어른거린다. 막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으로 체실 비치에 도착한 두 남녀,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속에서 나와 하늘 나라에 먼저 간 아내가 겹쳐지었다. 서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서툴렀기에 가장 행복해애야 할 순간에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고 만다. 그 영화의 잔상이 남아, 나는 서울 가는 길에 밀레네 뤼달(강현주 번역)의 『덴마크 사람들 처럼』 책을 가방에 넣고, 버스 안에서 다시 읽었다. 이 번 연휴 기간동안 이 책을 리뷰할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는 그 영화를 다시 생각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몇 일전에 썼던 아침 글을 찾아 보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거대한 태풍의 눈에 들어선 돛단배와 같다."(배철현) 거친 바다를 지나 적막한 태풍의 눈으로 진입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감정이 솟아오른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그때 사랑은 자신의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상대방과 나와의 간격을 소중하게 여기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더불어 자신의 고결한 품위를 유지하는 절제를 요구한다. 사랑은 절제이다. 상대의 경계를 무단침입하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요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색욕(色慾)이다. 색욕은 무절제하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단테는 무절제를 이탈리어로 '인콘티넨차(incontinenza)'라 했다고 한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요실금'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다듬지 못하고 영혼을 돌보지 않으면 요실금처럼 품격을 망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 감정이 사랑인가' 질문하기도 한다.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황금률처럼 진정한 겸손, 용기, 믿음 그리고 훈련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보물이다. 사랑은 한순간에 빠지는 동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낄 수 있도록 수련(修鍊)으로 도달하는 마음의 상태, 즉 형용사이다. 배철현 교수의 멋진 정의이다.

버스에서 읽은 행복의 문제는 오늘 오후에 정리해 볼 생각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는 아침인데,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제법 크다. 빗소리가 나는 것은 비에 빗소리를 꿰매는 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신용목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오늘 아침 공유한다. 여러 번 읽어야 와 닿는다. 쉽지 않다. 시인은 빗소리에  말을 숨겨두었다고 한다. 멋지다. "안개가 바닥을 어슬렁거리며"  떠도는 것은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아마 시인은 지붕이 비가 새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시인은 비오는 날이면 차라리 강 하구의 돌밭에 자주 나갔나 보다. 물론 그때마다 시인은 강가에서 아름다운 돌 몇 개를 주워 다 책상 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물은 마모된 돌”이니, 시인은 강가에서 돌을 하나 들고 빗방울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오전에 본 영화에서도 '돌'의 이미지가 나온다. 파도에 닳은 돌들의 부딪치는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시인의 상상(想像)과 영화 감독의 상상은 다르다. 어제 강의 시간에 나는 상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건조한 것은 상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이슈는 사회의 계급문제이다. 누군가가 특정 사회 계층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혜택을 누릴 때, 더 많은 누군가는 그런 혜택이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 우리 사회의 계급문제를 해결할까?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시민들의 삶의 좌우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불평등 계급의 완화를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언론의 기자들이 좀 나섰으면 한다. 사회만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각자의 행복을 위한 각자의 상상력을 회복해야 한다. 상상력을 키우는 데 최고 좋은 방법이 시를 읽는 일이다.

숨겨둔 말/신용목

신은 비에 빗소리를 꿰매느라 여름의 더위를 다 써버렸다.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구하기 위하여 안개가 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아침이었다.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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