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혹은 믿음'이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은 태풍도 지나가고, "뜨거웠던" 조국 후보자의 청문회도 끝나고, 개운해야 할 텐데 그러하지가 못하다. 머리가 무겁다.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았고, 지금 한국에는 계급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와 명예, 권력의 대물림이 불법적 통로를 거쳐 이뤄졌다면, 그래서 사후에 제재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본, 지위, 네트워크 등 합법적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더 나쁘다.
내가 좋아하는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의 지적을 요약해 본다. 우리나라 386(지금은 586) 엘리트들은 1987년 체제를 쟁취한 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기에 민주화 운동으로 얻은 상징 자본을 밑천으로 곧장 엘리트 코스로 진입했다. 그리고 각자 조직 내 경쟁에서 이기고 대한민국 1%가 된 엘리트들은 이때부터 조직 밖으로 눈을 돌리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동맹을 강화한다.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가 촘촘하게 끈끈하게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이익 동맹'을 구축한다. 그후 10년이 다시 흘러 50대 중후반이 되자 마침내 대한민국 0,1%의 최후 승자가 되었다.
실망스럽게도 그들은 20년 동안 지적으로는 게을러졌고 도덕적으로는 해이해졌다. 기득권 '꼰대'가 되었다. 세상의 변화를 읽는 통찰이 20년 전보다 못하다. 공적 마인드는 약해지고 사적 욕망은 커졌다. 사적 네트워크로 얽히고설키다 보니 '아는 사람'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데 부끄러움도 없다. 이미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도 개혁의 주체인 양 착각하고 있다. 자신을 향한 성찰도 20년 전보다 못하다. "통찰은 부족하고 성찰도 없으니 현찰만 좇는 게 586 엘리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 되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 한다. 지금 이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0,1%의 엘리트가 사는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높은 담장 안쪽에 '그들 만의 성채'가 솟아 있음을 짐작 못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를 목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조국 후보자로 인해 나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담장 안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보통 시민들은 심한 박탈감을 느꼈다. 시민들은 계급의 실체를 본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조국 후보의 거취 문제보다는 더 고민해야 할 것이 한국 사회의 계급문제이다. 누군가가 특정 사회 계층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혜택을 누릴 때, 더 많은 누군가는 그런 혜택이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우리 사회의 계급문제를 해결할까?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시민들의 삶의 좌우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조국 후보에게서 나는 그의 자존감(self-esteem)을 보았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혹은 믿음'이다. 자신의 가치가 높음을 스스로 확고히 믿으면, '자기 효능감"이 생긴다. 자기 효능감은 특정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능력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높은 자존감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형성하여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으며 고통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힘을 준다. 실패와 고통 속에서 높은 자존감으로 성숙한 방어기제를 통해 또 일어서고 또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자존감이다.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얻는 것이다.
아침의 글에서 정치적 발언은 자제하기로 했다. 그냥 페북에서 본 이 문장을 인용한다. "비관주의자가 바람에 대해 불평하는 동안, 낙관주의자는 그 바람이 바뀌기를 바란다. 한편 현실주의자는 돛의 방향을 조절한다."(윌리엄 아서 워드) 나는 낙관주의자이다. 역사 속에서 앞으로의 한 발짝은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때라도 이루어진다.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나희덕
사랑에도 속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솔잎혹파리가 숲을 휩쓰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한 순간인 듯 한 계절인 듯
마음이 병들고도 남는 게 있다면
먹힌 마음을 스스로 달고 서 있어야 할
길고 긴 시간일 것입니다
수시로 병들지 않는다 하던
靑靑의 숲마저
예민해진 잎살을 마디마디 세우고
스치이는 바람결에도
빛 그림자를 흔들어댈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너무 이른, 또는 너무 늦은
단풍이 든 것만 같아
그 미친 빚마저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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