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비 그치더니, 기온이 떨어졌다. 바람마저 이젠 제법 시원하다. 좀 살 것 같다. 어제 오후는 저녁까지 바쁘게 지냈다. 둔산 도서관에서 <인문독서 아카데미>의 강의를 했다. 아직도 『돈키호테』를 읽는다. 긴 방학을 마치고 우린 일찍 개강을 했다. 책들을 읽고 오시면 좋은 텐데…. 내 역할은 최대한 고전을 읽고 싶도록 유혹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간간히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이다.
정민 선생의 책 중에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라는 부제를 달은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이 있다.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열정과 광기가 숨어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돈키호테』의 속편 제15장에는 돈키호테의 광기(狂氣)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가 나온다. "어쩔 수 없이 미친 사람과 자기가 좋아서 미친 사람이 된 사람 중에 누가 더 미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렇다. "어쩔 수 없이 미쳐 버린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치광이일 것이고 좋아서 미치광이가 된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그 미치광이를 그만둘 수 있는 것이겠죠." 흔히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미쳐야 한다고들 말한다. 돈키호테의 광기는 이러한 광기라고 나는 본다.
저녁에는 대전문화연대 <문화학교> 8월 강의를 내가 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아리랑 주점'에 가 막걸리를 한 주전자 마시고 집으로 왔다. 인문고전 강의를 하고, 바로 <대전 막걸리와 와인> 강의를 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잘못 탄 버스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대전역에서 부터 원도심의 뒷골목을 40분을 걸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주장이 생각났다. 오늘날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는 무리들은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우리들에게서 '몸과 장소와 시(詩)같은 상상력'으로부터 떼어놓고자” 노력한다.: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 과학 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과학의 도움을 받아 살지만 정작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리고 직접적 감각 체험으로 부터 멀어진 채 살아간다. 그럴수록 우리는 몸을 사용하고, 몸의 감각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남는 것은 몸 밖에 없다.
- 현대인은 또한 어떤 장소와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떠돈다. 마을이 해체되면서 공동체적 삶 또한 무너졌다. 마을은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고이는 장소가 아니다. 심지어 집조차 가족들의 기억의 뿌리가 아니라 재산 가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의미 있게 모여 사는 공동체 공간으로 회복해야 한다.
- 풍요의 환상을 따르는 이들은 산문적인 현실에 충실할 뿐 시적 세계에서 노닐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삶의 개선을 위한 다양한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일상은 성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회일 뿐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 깃든 시적 광휘(光輝)를 보지 못한다. 시적 사고는 현실 부적응자들의 낭만적 퇴행으로 치부될 뿐이다. 시를 읽어,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그 상상력으로 삶이 개선된다.
뒷골목을 걸으며 보았다. 그들의 삶은 두텁지 못한 채 납작해졌고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은 고갈된 것 같았다. 오로지 주류 세계가 제시하는 길을 묵묵히 따라 달릴 뿐이다. 피로와 권태 그리고 무의미가 사람들을 확고히 사로잡고 있을 뿐이다. 삼삼오오 모여 다 쓸어져 가는 집에서 화투놀이를 하거나, 길 가에 넋을 내려놓고 앉아있을 뿐이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상상하고, 몸을 사용하고 사는 공간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 우리들이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 60> 프로그램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는 당분간 나희덕 시인의 시를 아침마다 공유할 생각이다. 시인처럼, 나도 아침에 내린 비로 "젖은 신발창에 따라"오는 여름 낙엽을 붙이고 걸었다. 그 말,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오묘하다. 오늘 아침 시는 <와인과 인문학 아카데미>라는 좋은 밴드에 올린 나의 <사진 하나, 시 하나>의 글에 페르소나라는 분이 댓글로 올려준 것이다. 감사하다. 그분도 나처럼 나희덕 시인의 시를 좋아한단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 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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