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는 벌어지거나 벌어진 틈을 막는 것이고, 소통은 그 틈을 더 벌어지게 하는 것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약속한대로, 오늘 아침도 '소외'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지난 8월21일에 이어 공유한다. '소외'란 말을 하면 우리는 바로 소통을 생각한다. 소통이란 '소'를 극복(通)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말을 다 공감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즐거운 것이다. 그래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친구로 삼는다. 오늘 아침 하고 싶은 말은 소통이라는 말에서 '통'에 방점을 찍기 보다 '소'에 찍어야 한다. 왜냐하면 소통이란 소외의 구조에 저항하며, 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의 뜻이 '틈이 벌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외는 벌어지거나 벌어진 틈을 막는 것이고, 소통은 그 틈을 더 벌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통을 잘 하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우선 내가 망가져야 한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하지 않은 채, 나만이 옳다며 자기 원칙만을 고집할 경우 애초부터 소통은 불가능해 진다. 그래 우리는 지금 어떤 소외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지 묻고 알아야 한다.
소외는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 소외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알고, 내 삶이 전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토로나-19의 재확산으로 아침부터 강의 취소가 이어진다. 그냥,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접는다." 아침 사진은 어제 산책길에서 만난 '소외된' 배나무에 외롭게 매달린 것들을 찍은 것이다.
접는다는 것/권상진
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
접혀진 자국이 경계같이 선명하다
한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하다
오래전부터 내가 주장하는 내용이다. 오늘날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 내어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자본은 '사람을 그 몸과 장소와 상상으로부터 떼어놓고자' 노력한다.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소외 문제이다.
§ 과학 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과학의 도움을 받아 살지만 정작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첨단에서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직접적 감각 체험으로 부터 멀어진 채 살아간다. 몸을 사용하고, 몸의 감각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 현대인은 또한 어떤 장소와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떠돈다. 마을이 해체되면서 공동체적 삶 또한 무너졌다. 마을은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고이는 장소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조차 가족들의 기억의 뿌리가 아니라 재산 가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최근의 부동산 문제가 거기서 나온 것이다.
§ 풍요의 환상을 따르는 이들은 산문적인 현실에 충실할 뿐 시적 세계에서 노닐지 못한다. 일상은 성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회일 뿐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 깃든 신적 광휘와 경이를 보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시적 사고는 현실 부적응자들의 낭만적 퇴행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시를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은유의 함을 기르고, 상상과 창의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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