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표 생각: 인문 산책
2년 전 오늘 글이에요.





한표 생각: 인문 산책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이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 서와 같이 땅에 서도 이루어 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 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 하 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 서. 아멘" (마태 6:9-13, 루카 11:2-4) 한 구절 씩 정밀 독해를 한다.
- 주님의 기도는 '주님이 가르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이 직접 바치신 기도'이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늘의 의미는 '우주를 주재하시는 분', 즉 '초월적인 분"이란 뜻이 담겨 있다.
- '우리 아버지'에서 '우리'는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우리 아들' 할 때의 '우리'이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우리 엄마'할 때의 뉘앙스로 '우리 아빠'라고 불렀던 거다.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란 뜻의 그리스어인 '파테르(Pater)'로 기록한 것이다. 하느님을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니까 거리를 두는 거다.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빛날 때는 나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지 않을 때이다. 그럴 때 빛이 난다. 자주 나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지 않았는가 따져봐야 한다.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심'이란 아버지 안에 내가 있는 거다. 동시에 내 안에 아버지가 있는 거다. 그렇게 서로에게 거(居)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이다. 그건 나와 하느님의 관계 성이다. 나와 하느님의 커뮤니케이션, 거기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다.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에서 "땅"은 인간이다. 우리의 내면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우리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막는 장애물은 '나의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 했다. 나도 이 기도를 제일 좋아한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산상수훈 속에 담겨 있다. 그래 나는 오늘부터 산상수훈의 여덟 가지를 매일 아침마다 암기하고, 그것으로 최선을 위한 하루의 전략을 짤 생각이다.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에서 육체적인 양식은 빵이고, 영적인 양식은 '말씀'이다. 그런데 그 양식을 때때로 우리가 차단한다. '나의 뜻'이 '하느님의 뜻'을 가릴 때처럼 말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성경 구절을 나는 알고 있다.
- 미사에서 '주님의 기도'를 올릴 때는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라고 끝을 맺는데, 왜 '영원히'인가? 이 3 차원 공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그런데 3 차원 공간을 넘어서면 공간이란 개념도, 시간이란 개념도 부질없는 곳이다. 그 세상에 '영원함'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죽으면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난 이제부터 사후 세계를 믿을 것이다. 그 영원의 세계를 믿기 때문이다.
- 어떤 사람은 "달라"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겠다"고 기도한다, 어떤 게 기도인가? 기도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생계형 기도"와 "이슬형 기도".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거룩한 일이다. 그들에겐 밥이 하늘이다. 그들은 먹고 사는 생계 속에서 예수님의 구체적인 손길과 사랑을 느낀다. 그래 이제부터 나도 기복적인 기도도 기도로 받아 들일 생각이다. 그러나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이슬형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관조나 묵상 등 깊은 몰입에 들어가는 일치형 기도라고 설명한다.
- '주님의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주님을 만나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와 하늘이 통해야 한다. 그런데 두꺼운 장막이 쳐져 있다. 그게 하늘 장막이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그 장막을 뚫게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잇게 한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이 '너희가 나에게 도달하고 싶으냐, 그럼 요렇게 해봐라'하고 '노하우'를 알려주신 거다. '초월하라'는 거다.
나는 '초월'이란 말을 좋아한다. 내 한계의 담을 넓혀 하느님의 나라까지 다다르려는 초월을 우리는 '신에게로의 초월'이라고 한다. 초월은 내가 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친 담 장이 허물어 지고, 내 영토가 확장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