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학을 우리의 삶에 구현하려는 인문 운동가는 늙지 않는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20. 09:06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아침에 하지 못한 인문학 이야기를 오늘 아침 더 이어간다. 인간은 철학, 문학, 예술, 역사, 언어, 정치, 사회, 종교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들을 통해서 자아, 타자, 세계의 경험을 표현하여 왔다. 이때 인문학에서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새로운 물음들을 통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유하기이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일이다.

이는 해답이 아닌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다. 질문은 심오한 사유의 세계로의 초청장이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유'란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왜'라는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현상유지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삶이 "노블레스 노마드"의 삶이다. 그런 노블레스 노마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의 8 가지로 요약하였다. 나는 여기에 모두 속한다. 그래 나는 '신 귀족', '노블레스 노마드'이다.
(1) 나는 일도 여가처럼 하고, 직장에서도 휴가지 에서처럼 산다.
(2) 나는 매사에 창의적이다.
(3) 나는 개인의 행복 추구가 우선이다.
(4) 나는 인문학적 소양이 깊다.
(5) 나는 소유 대신 경험을 중시한다. 가지는 것은 끝이다. 임대 비즈니스에 매달린다.
(6) 나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7) 나는 상품 가치가 뛰어난 지식 사업가이다.
(8) 나는 감성의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연줄은 가라! 그들은 생각이나 지향점이 같으면 형제이다.

오늘 아침 시는 정희성 시인의 것이다. 사진은 내가 아침마다 늘 하는 산책길이다. 긴 장마 후 하늘이 벌써 높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달라졌다/정희성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 졌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존 어려운 말인데, 잘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한 말이다. "위험한 사상이란 없다. 사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다양한 인문학적 담론들은 비판적 사유와 저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저항에 방점을 찍는다.

비판적 저항으로 서의 인문학이 나아갈 길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확장을 위하여 약자들과 연대와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항을 잘 따져야 한다. 저항은 누구의 저항이며, 무엇을 위한 저항인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위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약자들에 대한 진압 방식인가? 아니면 권력의 중심부 밖에서 자유와 평등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변혁을 모색하는 방식인가? 그래서 인문학에서 '저항'을 말할 때는 '비판적 저항'이라고 말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영역을 나누어 저항을 말할 수 있다.

* 정치적 저항: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억압하는 정치, 다양성을 차단하고 획일 화하는 정치, 또는 다양한 형태의 적대와 배제를 제도화하는 정치 체제들에 문제제기를 하고 변혁을 요청하는 정치적 저항은 인문학적 담론들의 실천적 개입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사회적 저항: 현대사회를 분석하고 조명하는 데에 사용되는 분석적 틀들이 있다. 젠더, 인종, 계층, 나이, 장애, 성적 성향 또는 국적 등과 같은 분석적 렌즈를 가지고서 사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층적 차별, 배제, 억압의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과 억압을 '정상-비정상'의 담론들로 정당화하는 사회적 가치 구조를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저항의 차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과제이다.

* 종교적 저항: 인류 역사에서 종교는 억압과 해방이라는 두 종류의 상충적인 역할을 해왔다. 종교는 인간에게 해방과 자유의 삶을 마련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신이나 진리의 이름으로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폭력 기제들을  정당화하여 왔다. "진리의 테러리즘"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신의 이름으로 여성, 성 소수자, 타 종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종교에 대하여 분석하고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저항 정신은 주요한 인문학적 가치인 평화, 평등, 정의의 확산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 윤리적 저항: 이것은 이전의 세 가지 저항과 조금 다른 특성을 지닌다.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저항이 제도와 구조적인 면에 그 초점이 있는 반면, 윤리적 저항은 개별인들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저항은 다른 세 차원의 저항들에 자신을 개입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윤리적 저항을 통해서 자신 속에 있는 인간으로 서의 이기성, 권력에의 집착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게 한다. 이러한 윤리적 저항은 "너/그들"을 악마 화하지 않게 하며, 자신 속의 인식의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윤리적 저항은 나의 살아감 이란 결국 '타자들과 함께-살아감'이라는 인식을 하게 함으로써 정치, 사회, 종교적 억압과 차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자신을 '기투(企投)' 하도록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인문 운동은 우아한 문화활동이 아니다. 나, 타자,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과 마주하고 씨름하는 치열한 행위이며, 비판적 성찰과 고뇌의 시간을 통해서 비로서 조금씩 이 세계를 향하여 자신을 기투하고 개입하는 사유이고 실천이다. 여기서 나오는 인문학적 소양인, 인문정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통해서 그 싹이 돋아나게 된다.
* 확실성을 경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사유하기.
* 고정된 정답 찾기보다 새로운 질문 묻기를 배우기.
* 그리고 상투성에 저항하고, 자명성에 물음표 붙이기.

그래 인문학을 우리의 삶에 구현하려는 인문 운동가는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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