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은 똑같아지는 게 아니라 개성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짧은 인생을 살면서, 아름다운 것은 똑같아지는 게 아니라 개성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의 흉내를 내고, 남의 눈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자기 것으로 고집하는 것은 비극이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보다 성숙한 모습을 추구하는 미완의 존재이다.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지난 주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일주일 내내 비가 왔다. 지금도 밖은 비가 굵게 내린다. 걱정이다. 나의 만트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도 마음의 힘이 되지 못한다. 이러다 온통 홍수로 다 물에 잠기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기상 전문가들에 의하면, 올해처럼 길고 긴 장마는 기후변화 탓이라고 한다. 시베리아의 이상 고온 현상으로 뜨거워진 공기가 상승해 동시베리아의 대기 흐름을 막고, 이런 가운데 북극 기온 상승으로 극지방 주변 제트기류가 약화되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해 북태평양 고기압의 북상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니까 올 장마는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더운 공기와 부딪히면서 많은 비를 뿌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 이변이 더 자주, 더 큰 규모로 발생할 것라는 데 큰 걱정이다. 이제 정말 일상에서 지구를 지키는 일에 더 많이 신경써야 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긴 장마만큼, 우리 사회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부동산 정책 이야기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동산보다 땀 흘려 번 돈이 우대받아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자리가 있더라도 근로소득을 올려 확대되는 소득양극화에 정면으로 맞서기는 불가항력이라고 보고 너도 나도 부동산에 뛰어든다. 현대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일자리를 통한 복지국가, 즉 완전고용 목표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일자리가 아닌 자산소득 확보가 더 중요한 생존게임이 되었다. 부자는 건물이나 토지에 투자하고, 서민은 있는 돈을 털어서 사는 집을 통해서라도 자산을 늘리는 게 생존 투쟁 방식이자 재산 증식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한정된 부동산 자산을 가지고 벌이는 생존게임은 결국 승자와 패자를 만들고 자칫 순식간에 거품이 꺼지면서 국가와 개인의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게 문제이다.
현명한 정책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어제는 소설가 백영옥의 칼럼에서 "샤워실의 바보"라는 말을 배웠다. 이 말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라 한다. 섣부른 정책으로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을 '샤워실의 바보'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샤워기의 적정 온도를 설정하기까지는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리지 못하고 손잡이를 좌우로 힘껏 돌리면 너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반복적으로 나와 원하는 온도로 샤워를 할 수 없다.
최근에 나는 주변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데, 전혀 관심 밖이다. 부동산이 없고, 또 부동산을 살 돈도 없지만,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 집값이 몇 억 뛰었다는 소리와 함께 이번 생은 망했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자본주의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애담 스미스가 말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인간은 '호의를 베푸는 이기주의자'이고, 『국부론』의 시장은 이런 인간들이 뛰노는 곳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곳이다. 어제 지인의 페북에서 만난 멋진 표현이 기억난다.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은 ‘도덕감정이 유지되게 하는 어루만짐’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유 시장주의’는 도덕이 실현되는 세상이다. 도덕 감정이 빠진 시장주의는 '부도덕한' 자본만이 득실거린다. 그리고 『국부론』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기심이라는 표현이 'selfishness(제멋대로임, 이기적임- 남의 이익을 침해해서라도 내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아니라, 'self-love(자기애, 자기에 대한 사람)'라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은 self-love이다. 그 말은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남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남을 대할 때도 다르다. 남이 내게 손해를 입히면 싫은 것처럼, 나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 그건 양심이 충고를 하는 소리이다. 요약하면, 애덤 스미스가 전제한 것은 사장에 나온 인간이 selfishness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self-love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는 타인에게 호의를 가진 '자기 사랑'의 인간들이 존재하는 시장이 속임수가 없는 공정한 가격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속에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때문에 독점도 없고 착취도 없다. 임금이나 이윤이 특정한 사람에게 쏠리는 현상도 제한된다. 그리고 분업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게 한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가 찾은 신의 질서의 법칙이다. 이 때 국가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공공기관과 공공사업 운영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런 신의 질서에 탐욕(selfishness)스런 인간이 나타나 세상을 괴롭힌다. 그래 우리는 뭉쳐 응징하고, 굴복 당하지 말하야 한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애덤 스미스를 인뇽한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잘 알고 말해야 한다. 예컨대, 탐욕스런 자들에 의해 애덤 스미스가 경제적인 동물인 이기적인 인간을 창안하고 옹호한 우두머리가 되었다. 신의 질서를 위반하면, 신의 무서운 '벌'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수많은 부동산 대책 문제는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 잘 보이는 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위에는 정책이 있고,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소설가 백영옥은 흥미롭고 좋은 예를 소개했다.
(1)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에서 쥐 떼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결국 쥐 박멸을 목표로 쥐 꼬리를 가져오면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포상금이 늘어도 도무지 쥐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꼬리만 자르고 사람들이 풀어주는 쥐가 문제였다. 쥐가 번식하면 더 많은 쥐 꼬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쥐 꼬리만 자르고 풀어주는 일을 반복했던 것이다. 결국 포상금 제도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2) 한 소년이 새총으로 목표를 겨냥하는 중국의 선전 포스터가 있다. 그 유명한 참새 타도 포스터다. 1950년대 후반 마오쩌둥은 곡식을 쪼아 먹어 인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참새를 박멸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모든 인민이 대거 참여한 참새 소탕 작전으로 한 해 2억 마리의 참새가 사라진다. 하지만 기다리던 풍년은 오지 않았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진 자리에 메뚜기와 해충이 창궐했기 때문이다. 결국 1958년부터 3년간 3000만명의 중국 사람이 굶어 죽는다. 소련에서 급히 참새 20만 마리를 수입했지만, 때를 놓친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집을 팔고, 유학을 따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면서 후회하지 않는다. 류시화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다. 이게 인문정신이다. 시장 논리와는 다르다. 부동산은 없지만,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나는 후회하지 않고 그렇게 살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적어 두었던 나의 행복론은 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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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서의 행복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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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행복은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로,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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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행복은 돈이 많으냐, 적으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 재정 상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가 이다. 경제적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재정상태를 유지하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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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행복은 건강한 신체와 일상적인 활동을 무난히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가 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좋은 식습관 그리고 숙면에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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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적 행복은 현재 살고 있는 지역, 속해 있는 그룹에 대한 참여의 문제이다. 조금은 불편해도 모두를 위한 즐거운 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하면서 즐기고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는가 이다.
그래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공동체(community)를 회복하려는 일에 열심이다. 그래 나는 '3:2:2 법칙'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3일은 내 일을 하고, 2일은 공동체를 위해 일을 하고, 2일는 휴식하는 것이다. <우리마을대학>을 위한 고민을 많이 한다.
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류시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8월 두 번째 일요일이다. 그래 오늘 아침도 매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1. "우리에겐 균형이 딱 맞는 완벽한 행복이나 건강은 없는 것 같아요.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친했던 인연들과 멀어지고, 유명해지면 생각지도 못했던 안티들이 나타납니다. 아버지가 너무 잘 나가면 아들이 심리적 문제가 생기고, 아들이 또 잘 나가면 아버지가 위축되어 버립니다. 이처럼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꼭 잃게 되어있어요. 우주가 그렇게 돌아가니 너무 큰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은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나의 행복론 노트에 적어 두었던 글이다.
2. '행복하기 위해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성공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며, 내가 늘 기억하려고 애쓰는 문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자동으로 반응할 뿐, 이 공식의 원래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는 그냥 '물신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어느덧 '행복'이라는 시작은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만 남아 있다. '물신주의' 라는 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나온 것이다. 노동의 산물인 상품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비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생활의 수단인 상품이, 교환가치의 척도인 화폐가 '물신(物神)'으로 승격하였다. 수단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행복을 위한 풍요, 풍요를 위한 성공이 변해서 물질적 성공만이 삶에서 추구해야 할 전부가 되어 버렸다. 이런 물신주의는 현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더 단단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지본주의는 속도와 완급, 복지를 절충해가면서 도입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식민지였기에 자본주의는 더욱 야만적이었다. 게다가 해방 이후 본격화한 경제 발전은 공동체를 해체하는 자본주의적 확산을 의미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발전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사전 예방적 의미의 작업이었다. 우리 내부의 행복 증진이 아니라, 체제 대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경제 발전이었다. 6·70년대 질주하던 북한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남한은 수출에 사활을 걸었다. 이런 천민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다르게 살려고 해야 한다. 자신의 잘난 점을 과시하고 남의 약점을 발견해 짓밟으면서 상대를 이겨 출세하는 식의 자본주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보아야 한다.
3. 지난 2018년 6월 14일에 했던 생각이다. 다시 불러온다. "사람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가치관에 따라 다른 인생관이지만 공통점을 찾는다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내가 일을 하는 것도,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공부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행복한 삶’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남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사는,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의 노예가 되어 이성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아름다운 것은 똑같아지는 게 아니라 개성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의 흉내를 내고, 남의 눈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본 세상을 자기 것으로 고집하는 것은 비극이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보다 성숙한 모습을 추구하는 미완의 존재이다.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본다."
4. "너희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으며, 너희들이 피하고 싶은 상황에 절대 빠지 말아라!" 노예였다가 스토아 철학자 된 에픽테토스의 말이다. 그의 철학은 추상적이 개념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일상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 가능한 조언들이다.
쉽고도 어려운 조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인문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 정신이란 자신에 주어진, 자신에게 알맞은 인생의 과업을 심사숙고하여 찾아내는 여정이다. 만일 그가 인생의 과업을 발견했다면, 자신답지 않은 것, 즉 자신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야, 우리가 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젠 그의 조언을 이해했다. 교육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유도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이 과정을 통해, 누구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 자아상을 구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지금' 즐길 수 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일상의 훈련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기 위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분야를 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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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慾望): 욕망은 나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잠재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로 정의된다. 에틱테토스는 욕망을 '오렉시스'로 표현했다. 이 말은 '뻗을 수 있는 곳까지 팔을 최대한으로 뻗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은 팔을 움츠리지 말고 최대한으로 펴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인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팔로 획득할 수 있는 것과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걸 구별하는 것이다. 내 팔로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탐욕이라고 본다. 그러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몰입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마음이 바로 '오렉시스',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이다. 이 오렉시스를 매일 훈련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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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選擇): 선택은 나의 최선을 집약 시킬 대상을 선별하는 능력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훌륭하게 마칠 수 있게 하는 내 일은 심사숙고를 통해, 내가 사적으로 한 선택의 결과이다. 또한 선택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함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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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承服): 승복은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완수하려는 결심이다.
에픽테토스는 매일 아침 자기 안에서 이 세가지 원칙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배철현 선생은 우리에게 말한다.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집중하여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너무 힘들게 살 필요 없다. 배철현 선생의 <매일 묵상>을 읽고, 내 삶을 위해 정리해 두었던 글이다.
5. "나는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안 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각오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것은 없다.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 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더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지난 해 9월 어느 날 적어두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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