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고향은 나의 까닭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9. 17:23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오디세우스가 '온전한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곳'으로 귀환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고향'을 찾는 이야기이죠.

문뜩 고향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고향은 나의 까닭이다.

고향을 한자로 이렇게 쓴다. 故鄕. 古鄕, 이 게 아니다. 고향은 단지 "단순히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오랜 시간 전의 동네"가 아니다. 故자는 '연고'고, '근거'고, '원래'이고, '본래'를 의미한다. '까닭'이자 '연유'다. 그러니까 고향은 나의 본래 모습, '원래의 나'가 있었던 곳이다. 거기서는 내가 '일반명사'로 이탈하지 않고, '고유명사'로 살아 있을 수 있었다.

반면, '나'들이 '타자'들의 거대한 공간에서 또 다른 '타자'로 동화되어 가는 곳이 타향他鄕이다.

우린 타향에서의 '나'는 '고유명사'인 '나'로 돌아다니거나 '원래의 나'를 드러내고 다니기보다는 '타자'들과 동화되면서 갖게 된 다양한 수식어의 덩어리를 달고 다닌다. 이른바 '익명성'이다.

타향에서 나는 익명성 속에 숨어 지내는 '감춰진 존재'이다.
'감춰진 존재'들끼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양한 수식어를 통해서 가늠할 수밖에 없다.

고향에 산다는 것은 '나'로 사는 일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일원으로 존재해 버리면, 그것은 모두 타향살이다.

'나'를 삶의 주인으로 두지 못하고, 그 주인 자리를 화장기로 꾸며 놓은 뻣뻣한 가면에 양보하고 사는 사람은 고행을 잃고 방랑하는 사람이다.

고향은 바로 내가 나로 드러나는 곳이다.
네 주인 자리를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람, 모두 고향을 떠나지 않거나 고향으로 되돌아 온 사람이다.

고향에서 처럼, '나'로 사는 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