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벌써 오늘 아침이 7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린다'는 '어정칠월'이 이렇게 지나간다. 장마와 코로나-19로 망가진 일상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오늘 아침도 매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장마로 비가 지겹게 내리지만, 나는 하는 말마다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를 붙이면서 기분이 전환되었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비'라 말하는 순간, 정말로 비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감정이 바뀐다. 감정은 마음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사진이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의 '아름다운 비'에 젖지만, 자신의 할 일을 기쁘게 하는 '맥문동'이다. 때를 맞추어 보랏빛 꽃을 피운다.
'아름다운'이란 말의 프랑스어는 '보(beau)'이다. 이 형사의 여성형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벨(belle)'이다. 모든 사물에 이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넣어본다. 단어가 새롭다. 이렇게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면, 그 단어가 자주 눈에 뛴다. 그 단어가 새롭게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늘 거기에 있었지만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문맹이다. 특히 모국어와 함께 성장하고 그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면서 슬프게도 우리는 많은 단어들을 상투 화하면서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사용하거나, 아예 모른다.
그 말의 소중함을 잃어 버린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이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결정하며 사물을 보는 시각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거꾸로,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과 감정을 결정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기도 한다. 내가 낯선 단어와 문장들에 익숙해 가는 동안,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인식의 지평도 확장된다. 언어가 의식을 바꾼다. 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무엇을 보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지, 무엇을 듣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지, 무엇을 느끼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 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그래 싫어한다는 말은 가급적 하지 않을 생각이다.
꽃잎에 비 내리면/양현근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하루를 꼬박 울고도 모자라
꽃잎에 노래 한 소절 기어이 얹어 놓는다
밤새도록 옆에서 통음하던 달이
도미솔 도미솔 낮은 화음으로 걸리면
호기심의 골목마다
만삭의 욕망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들
세상은
흔들릴수록 단단해 지는 감옥이라서
한 사발의 부질없는 안부 마저도
적막 공중에 부치지 못한다
플라타너스 잎잎에 부서지던
외짝 가슴에
기어이 아침이 밝아오고
누가 볼까 봐 보고 싶다는 말
참 보고 싶다는 말을
비 개인 하늘 한 귀퉁이에 슬며시 찔러 두었다.
오늘은 어제 '주님'을 모시지 않아 일찍 일어나, 두 개의 글을 정독 했다. 하나는 "우리가 외면한 세계, 쿠바는 어떻게 코로나를 이겼나"이다. 글쓴이는 쿠바 의과대 재학생인 김해완이다. 내가 태어난 1959년에 시작된 쿠바 혁명 정부는 경제를 왜곡시키는 외국 자본을 일소하고 국민 모두를 위한 발전을 추진했지만, 발전의 시계는 1991년에 멈췄다. 쿠바 지원국이었던 소련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후로 쿠바는 미국의 경제 봉쇄를 홀로 버텨냈다. 이 고립된 생태계가 역설적으로 오늘날 어떤 사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느린 풍경'을 만들어 냈다. 아직도 쿠바인들은 개발의 열기가 침투하지 않은 커뮤니티 속에서 정을 나누며 소박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 곳에도 코로나-19가 들어왔지만, 예상을 깨고 방역에 성공을 하였다. 글쓴이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꼽았다. (1) 의료 제도의 높은 접근성 (2) 의대생들의 문진(問診) 활동 (3) 주민들의 끈끈한 커뮤니티. 글쓴이는 쿠바를 '가난한 의료 선진국'이라 보았다. 쿠바의 의료제도는 '100% 무상'이다. 이는 의료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지정한 헌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료로 이루어지는 의료 접근성에다가 물리적인 접근성도 좋다. 병원이 너무 멀어서 걸음하기가 어렵다면 이는 의료제도로부터 물리적으로 소외되는 것이다. 쿠바는 가족 주치의와 그들의 근무지인 콘솔또리오(consultorio)가 어느 가정 집에 서든지 도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가족 주치의는 그곳에서 몇 년 씩 상주하면서 평균 500가구의 가족들의 건강을 상시적으로 살핀다. 이게 코로나를 막은 예방의학 시스템이다. 쿠바는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중 교통을 전면 중단시켰다. 그래도 가능했던 것이 교통 수단 없이도 의사를 만나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이 먼 시가지가 아니라 바로 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동네를 고립시켜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쿠바는 우리의 고정 관념을 깨뜨릴 소중한 현장이 되었다. 우리는 선진국에서만 과학과 의료가 발전할 수 있다고들 생각한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쿠바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현장으로 증명하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지 않고, 정보도 전산화되지 않은 쿠바지만, 쿠바는 그들의 방식으로 코로나를 훌륭하게 이겨내고 있다. 수치가 말해준다. 내가 <우리마을대학>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려는 비전을 오늘 아침 쿠바에서 찾았다. 동네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 우리 삶이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글은 여성학 연구자로 알려진 정희진 선생의 글이다. 제목이 끌렸다. "절충은 융합이 아니다." 대립하는 논리의 충동은 필연적이다. 융합은 충돌을 지향한다. 충동하지 않으면 새로움도 없다. 물과 기름이 섞이려면 다른 세계 간의 결합을 촉진하는 "계면(界面)/활성제(活性劑)"가 필요하다. "계면/활성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이 인문운동가의 역할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융합은 지향이 아니라 방식이다. 융합에 이르는 방식 중에 가장 흔한 방법이 '반대말, 비슷한 말' 공부이다. 모든 지식은 다른 지식과의 비교나 대비 등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절대로, 홀로 성립하는 개념은 없다. 모든 개념은 연결의 법칙이 다를 뿐 연결된다. 융합(融合)은 한자로 보아도 '합한다'는 뜻이다. '합한다'고 해서, 융합과 절충(折衷)은 다르다. 절충은 가장 대립하는 두 가지 개념에서 제일 좋은 것만 나열하는 방식이다.
개념들의 접목이 융합이 되려면, 무관한 개념처럼 보이는 것들 사이의 관련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내가 오늘 아침 공부한 것은 반대 개념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충돌과 모순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를 절충으로 해소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절충은 아무런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단지 봉합이 주요 목적이다. 충돌과정을 없애는 것이다. 절충은 대개 지당하신 말씀, 진부한 표현, 영혼 없는 연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반면 융합은 충돌을 지향한다. 그냥 합치지만 말고 충돌 양상에 대해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한다. 융합은 충돌하고 같이 도약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잘 배웠다. 그래 자신이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공부를 해야 한다.
다음은 지난 한 주 동안 나에게 인문정신을 고양시킨 글들이다.
1. 김미경의 책 『리부트』에서 코로나 이후 자기 계발의 핵심이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가 될 것이란 말을 발견했다. 이미 지닌 능력에 '플러스'하는 것으로는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는 것, 즉 쓸모가 다한 능력을 버리는 능력이 역설적으로 자산이 될 것이란 말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를 복원하는 방법은 일단 리셋하는 것이다. 이때 프로그램이 묻는다.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아니요'라고 누른 채 컴퓨터의 초기화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이렇듯 변화의 핵심에는 기존 것을 버리는 능력이 있다. 오래전, 주역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가리라. 하지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백영옥)
2. 개와 고양이는 우리를 잘생긴 주인, 못생긴 주인으로 나누지 않는다. 부자 주인, 가난한 주인으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개와 고양이와 있으면 우리는 '되고 싶은 나'가 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있는 힘껏 사랑받는다. 변덕스러운 인간에게서 결코 얻지 못하는 사랑과 위안을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애완의 시대에서 이제 반려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백영옥)
3. 비록 말에 불과할지 언정 아파트와 주택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자하고 거래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가. 정부 자신부터 부동산을 국가 경제의 한 축으로 보고 그로부터 부양될 경제적 효과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집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집에서 얻으려는 모든 화폐적 가치를 무산시켜야 한다. 불로소득의 대부분을 환수할 정도로 강력한 대책이 아니면 안 된다. 집은 이미 남아돈다. 그리고 집은 거기 사는 사람의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경제 논리가 아닌 삶의 논리로 집을 바라봐야 한다. (안희곤)
4. 요즘 우리 사회의 위험은 코로나19나 부동산 투기 세력이 아니라, 겉으로는 존경을 받는 리더들의 타락이다. 리더들은 남들이 가본 적 없는 길을 앞장서서 개척하는 사람이다. 그런 참신한 용기와 결단을 지니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덕목은 자기성찰과 자기 절제다. 자신에게 리더인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타인에게도 리더가 되기 때문이다. 가면을 쓰고 리더인 척하는 사람은 곧 들통나게 돼 있다. 리더가 리더인 이유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도덕적 군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을 지적해 주는 참모가 있고 그런 참모의 충고를 듣고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측근을 옆에 두고, 그 지적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배철현)
5. 도덕은 진보하는가? 그렇다. 지금은 노예 제도를 반대하고, 여성을 동상으로 제작할 수 있다. 50년 전만 해도 여성 동성 제작은 거부당했다. 도덕적 진보의 결과이고, 인권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에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갖기 까지 우리는 편견을 극복해야 했다. 더 나아가 그것들과 투쟁해야 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인간처럼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동물을 다룰 수 있다고 여긴다. 현대화된 공장에서 학대하다가 맛을 위해 고통스럽게 죽인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자 김경집의 다음과 지적은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지점이다. 물론 모든 게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 법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는 폭이 커지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 1918년 2월,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면 남성의 권위와 권력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뉴질랜드 10달러 지폐에 있는 얼굴의 주인공은 여성운동가 캐서린 셰퍼드다. 여성에게 가장 먼저 선거권을 보장한 뉴질랜드답다. 정작 프랑스혁명을 이끌었던 프랑스에서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1946년이었고 스위스는 무려 1971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 1955년 12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지시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분노했고 382일 동안 버스 승차를 거부했다. 그녀는 직장을 잃었고 남편도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로자 파크스는 타협하지 않고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각지를 돌며 연설했다. 버스 보이콧은 인종 분리에 저항하는 큰 규모로 번졌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참여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과 권익을 개선하라는 미국 시민권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많은 백인들도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1990년 로자 파크스는 미 행정부가 헌정할 수 있는 최고 예우인 대통령자유메달을 받았고 2005년 사망했을 때 여성으로는 처음으로(흑인으로는 두 번째) 미국 의회 캐피탈 힐에 안장되었다. 그녀를 ‘건방진 흑인 여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 가치는 결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피 흘리고 싸웠으며 편견과 왜곡을 이겨낸 결과물이다. 그들은 그 시대에 예외 없이 ‘위험하고 분수를 모르는’ 부적격자거나 과격한 진보주의자로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외침과 투쟁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세상은 그들의 주장을 따라 변화했다. 어제의 급진은 오늘의 진보, 오늘의 진보는 내일의 보수가 된다. 성숙한 보수라면 역사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무조건 반대와 거부가 능사가 아니다. (김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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