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 인문학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운동가는 인문치료사가 아니다. 인문운동가는 사람들을 계몽할 대상으로 보거나 고급 교양 교육과 사교의 장을 만드는 데 관여하지 않는다. 필링(peeling)하는 인문운동가가 되고 싶다. 한 동안 우리 사회를 달구고, 지금도 이야기도 있는 힐링(healing) 인문학은 절망의 인문학이다. 한국 방송대 유범상 교수가 쓴 『필링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고달픈 현실을 힐링하며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현실을 필링하는 말(馬)에 들러 붙은 '등에(쇠파리, gadfly)'가 되어 새로운 상상의 '산파(産婆)'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인문운동가는 현실에 천착(穿鑿, 어떤 원인이나 내용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해 있지만, 어는 편에 서서 통치나 저항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등에'처럼 모든 권력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가운데 새로운 상상을 하는 통로이며, 통로를 만드는 '산파'라고 보기 때문이다.
'산파'는 아이를 낳을 때에, 아이를 받고 산모를 도와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여자를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주선하여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네이버가 정의를 내린 것이다.
'등에'라는 말은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재판에서 변론할 때 나온 말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신(神)이 이 나라에 달라붙게 한 자입니다. 마치 몸집이 크고 혈통은 좋지만 그 큰 몸집 때문에 좀 둔한 말(馬)을 깨어 있게 하려면 등에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신은 저를 이 등에처럼 이 나라에 달라붙어 있게 하여, 여러분을 깨우치고, 온종일 어디나 따라가서 곁에 달라붙어 설득하고 비판하기를 그치지 않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만나 소나 말의 등에 착 달라붙는 '등에'처럼 끊임없이 묻고 비판하면서 물어뜯었다. 우리는 이 소크라테스를 포함 고대 그리스 정신에서 인문학의 원형을 본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그리스 정신'과 함께 인문학 원형을 살펴 본 다음, 본격적으로 인문운동가로서 "필링 인문학"을 펼쳐 보일 생각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보면, 모든 것이 긍정이다. 내일 아침은 소크라테스를 만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네가 있어/나태주
바람 부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끝까지
흔들리는 않는 나무가 된다
서로 찡그리며 사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돌아 앉아
혼자서도 웃음 짓는 사람이 된다
고맙다
기쁘다
힘든 날에도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비록 헤어져
오래 멀리 살지라도
너도 그러기를 바란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나태주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PS
그리스 로마 신화가 바탕을 이루는 헬레니즘은 인간중심주의, 현실주의 그리고 합리주의가 특징이다. 우리는 이걸 '그리스 정신'이라고 한다. 이 그리스 정신이 인문정신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쩌다 연세대 김상근 교수의 유튜브 강의를 듣고, 나는 이제 고대 그리스 정신을 잘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정신을 알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네 명의 인물과 함께 살펴 보라고 했다.
1. 문학가 호메로스가 말하는 삶과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 찬미: 살아서 행복을 누리는 인생이 죽음보다 고귀하다.
2. 철학가 소크라테스의 사유 방법: 숙고(熟考)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3. 철학가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 추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4. 정치가 알렉산드로스의 꿈: 인류의 문명을 위한 갈망과 사랑을 통해 이웃에 대한 관심을 실천해야 한다.
오늘 아침은 호메로스를 통하여, 고대 그리스가 우리에게 남긴 인문학적 유산인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긍정과 생(生)의 찬미를 이야기 한다. 내일은 소크라테스, 그 다음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에로스 론 그리고 정치가 알렉산드로스의 꿈을 통해 인문학의 원형인 그리스 정신에 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에 대해, 인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주어진 생명에 대해 긍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 두개의 작품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대 이집트를 통해 문명을 전수받았다. 분명히 "빛은 동방으로 부터" 왔다. 그런데 '동방의 빛'은 죽음의 그림자였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 이집트 문명을 생(生)의 찬미와 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바꾸었다. 『오딧세이아』에서, 아킬레우스는 저승 세계의 강력한 통치자로 군림하는 자신을 위로하는 오디세우스에게 "죽은 이들의 통치자가 되느니 산 사람의 머슴이 되는 게 낫다'고 토로하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주었다. 우리의 속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유는 지중해 연안에 출몰하던 페니키아인들, 즉 해상 세력의 영향으로 본다.
고대 그리스의 작품들을 보아도 우리는 삶과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정교한 고대 그리스의 작품을 보고, 단순히 조각한 장인들의 솜씨가 뛰어나다고 읽으면 안 된다. 그 작품 속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 사랑과 욕망에 대한 성찰이 있었음을 우리는 감지해야 한다.
이러한 그리스 정신을 잘 이해한 작가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이다. 나도 그의 소설을 아주 좋아한다. 고대 그리스 정신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이상하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서 삶을 긍정하고 인생을 찬미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르바에게 인생은 한바탕 추는 춤이다. 그에게 춤이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일단 술 한잔 마시라고 권한다. 그리고 함께 들이킨 다음, 자신이 나가서 춤을 출 테니 보라고 한다. 춤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춤을 추는 것이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을, 관념 속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춤추고 있는 자기 인생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인생을 긍정하고 삶을 찬미하는 그리스인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