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7. 18. 10:47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은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17일)

어제는 서울에서 좋아하는 분들이 내려왔다. 공직에서는 서울 사람들과 만나지 마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난 아무렇지 않게 환대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오후에는 백신을 맞는 기회를 가졌다. 그 분들을 모시고 제일 먼저 간 곳이 최제우 동학교 본부인 수운교였다. '서학(西學)'과 구별되는 '동학(東學)'을 꿈꾸었다.

"사인여천(事人如天)"이 크게 회향나무로 장식되어 있는데, 덥다고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인여천'이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이 강조한 인본주의 사상이다.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던 시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며 모든 인간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는 창시자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니 신분이나 성별 등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모든 사람을 하느님처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삶이라고 보았다. 이 사상은 구체적으로 '양천주(養天主)', '대인접물(待人接物)' 등의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곧 하늘이다. 하늘이 결코 나와 따른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모시고 있고(侍天主),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 인내천)이라는 것이 수운 최제우의 중심 사상이다. 그이 제자 최시형은 ‘인간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단순히 자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인식을 실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하느님을 각자가 길러 나가는 '양천주(養天主)'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양천주를 통해 실천적으로 하느님을 자각할 수 있게 된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접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이 바로 '대인접물' 사상이다. 양천주가 '사인여천'의 근거가 되는 이념이라면, '대인접물' 사상은 '사인여천'의 실천적 적용을 위한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대인(待人)과 접물(接物)이다. 내 이웃과 내 옆의 물건을 어떻게 대할까 의 문제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람이 집에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내려오셨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늘을 때리는 것이라 본다. 거기에다,  ‘사람이 곧 한울이다’(人乃天)를 기치로 내건 동학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천도교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崔時亨)의 원래 이름은 경상(慶翔)이었다. 그런데 이름을 시형(時亨)으로 바꾼다. 최시형은 최제우의 수제자이다. '시형'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이유는 “대저 도(道)는 때를 쓰고 활용하는 데 있나니 때와 짝하여 나아가지 못하면 이는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다”며 용시용활(用時用活) 철학 때문이라 한다. 그러면서 ‘우묵눌’(愚默訥: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의 자세로 삶을 살았다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감인대’(堪忍待: 참고, 견디며, 기다려라)와 같은 말이다. 오는 여름을 이런 자세로 보내고 싶다.

힘들면,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 참고 견디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는 곧  '꾸준함'을 유지하는 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성실함은 똑똑함 보다 훌륭한 재능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걸 가볍게 여긴다 머리 좋게 태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매사 성실히 노력하는 태도이다. <머니맨>이라는 담벼락에서 꾸준함을 유지하는 3 가지 방법을 만났다.
(1)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어떤 걸 매일 하면 굳이 잘 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하게 된다. 섣불리 결과가 나오길 바라며 초조해 하지 말아야 한다.
(2) 좋아하려 애쓰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좋아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면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좋아해도 꾸준히 하면 좋아하게 된다.
(3) 성과에 초조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매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는 탁월한 근성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고 했다. 똑똑함에 감탄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어떤 이의 집념을 보며 감동하는 일을 많다. 자기 안의 근성을 깨우는 일을 찾아야 한다. 꾸준함만 유지해도 반드시 탁월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지(維持)'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상태나 상황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변함없이 계속하여 지탱함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maintain' 또는 'Keep'이라 한다. 그냥 'Yuji'라고 쓰지 않는다. 프랑스어로는 maintien(맹띠엉), maintenance(맹뜨넝스)라 한다. 여기서 main(맹)이 손이고, tenant(뜨넝), 뜨넝스(tenance)는 잡다라는 뜻의 동사 tenir(뜨니르)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손에 잡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누가 하느님과 인터뷰를 했단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하느님이 대답했다. "돈벌기 위해 건강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 되찾기 위해 돈 잃는 것. 미래 염려하느라 현재 놓쳐버리는 것, 그리하여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하는 것"이다. 날씨는 덥지만, 오늘도 이 하루를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 "우묵눌’(愚默訥: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의 자세로 보내고 싶다.

다음 시를 읽다 보면, 하루 일을 마치면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행위를 표현할 때에 하루를 올린다고 한 것이 흥미롭다. 시인은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귀가하는 모습을 옹졸하다고 했다. 고단함을 베고 눕는다는 표현도 시적이다. 잠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이런저런 후회에 빠져 있다가 툭 털어버리려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루 일을 마친 수고의 땀으로 온 세상을 시원하게 적신다고 하니 하루 일과로 고생했던 시인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하루의 정신적 피곤함을 떨쳐버리고서 느끼는 시원함이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리라.

하루의 무게/박평화(서울 지하철에 걸린 시, 2018 시민공모작)

허공에 손을 내밀어 하루를 올린다
초라한 크기가 옹졸한 그림자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는 귀갓길

고단함 베고 누워
다시금 만지작거리는 하루가
아쉬움이었다가 후회였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때

다부지게 끄트머리를 움키고
꽈-악 비틀어 짜내 본다

후드득,
서려 있던 땀의 무게가
온 세상을 시원하게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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