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살던 삶에서 이런 것들을 배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7. 1. 08:51

10년 전 오늘 글이에요.

작년에 자유롭게 살기로 다짐하면서 기억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을 다시 기억해 낸다. 나는 두렵지 않다. 최근에 이유없는 어떤 불안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데, 무엇 때문일까? 아마 욕심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더 내려놓고,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그리고 여기서 현재를 웃으며 즐겁게 살자고 또 다짐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살던 삶에서 이런 것들을 배운다. 자유롭게 살려면, 조르바를 따라 이렇게 살아보자.

(1) ‘지금 가진 것’과 ‘앞으로 가져야 할 것’을 구분하지 않는 삶을 산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해 하며, 최대한 그것에 만족해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다가 죽으면 된다. 무엇이 두려운가? ‘앞으로 가져야 할 것’에 욕망하지 않는다.

(2) 남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산다. 비교하면 나를 주눅들게 한다. 나는 나이고,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주눅들 필요 없다.

(3) 어떤 일을 할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뒤에서 잡아 줄 끈을 끊어야 한다.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줄(끈)을 자를 수 없다. (...) 그 줄을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살 맛이 없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거는 삶은 멋지다. 그러다 죽는 것이다. 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4)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 하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을 확 부숴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조르바가 말한다. 너무 많이 따지고, 계산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5) 조르바는 육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어떤 일이든 몸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다만 우리가 자신의 몸을 두려워한다. 죽으면 그만인데. 몸이 약하다고, 힘이 없다고 주저하지 말고, 육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이 걷고 산에 가고 주말 농장에서 몸으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처럼 서생들에게는.

(6) 조르바의 우정은 서로를 향한 조건 없는 존중 속에 꽃을 피운다. 상대방을 ‘내가 아닌 모든 것’이라고 보고 대한다.

(7) 조르바에게서 이것도 배웠다. 인간(특히 우리 시대의 인간)에게 부족한 것은 지성, 아니 지식이 아니라 감성이고, 관념, 정신이 아니라 육체이고, 경건함이 아니라 관능이다. 시스템(이성)의 통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폴론의 합리성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광란이다. 가끔씩 디오니소스(박카스)를 모시고, 이성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껴보아야 한다.

(8) 조르바에게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몸뚱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그 일에만 집중한다. 무엇을 하던 지간에.

(9) 조르바는 세상의 논리로 보면, ‘나쁜 남자’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선행 밖에 모르는 완전함’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마음 깊은 곳의 선의에서 우러나온다.

(10) 조르바는 사람을, 그리고 예술과 자연을 사랑한다. 특히 사람을 사랑한다. 누구나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누구나 때가 되면 죽어 땅에 묻히고 구더기 밥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한 형제이다.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11) 조르바는 모든 것을 마치 ‘태어나 처음’인 것처럼 느끼고 바라본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감동한다.

(12) 조르바는 광산 사업의 파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춤을 춘다. 그 춤은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으로 비친다. 그리고 그 춤속에는 해방이 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판단한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시작되는 느낌의 해방을 엿볼 수 있다. 억압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해방이 아니다. 지나치게 믿고 기대하고 희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남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