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문화는 공간에서 싹튼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5. 10:23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은 6.25 전쟁일이다. 벌써 71년 전이다. 그 때의 참상을 난 겪어보지 못했지만, 미루어 보아 지옥이었을 것이다. "참전용사를 기립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처럼, 이쯤의 장미는 더 붉다. 당신들의 피라고 생각하며, 그 때 희생된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추모하며, 당신들께 바친다.

오늘 오후에는 <한밭대학교-대전마케팅공사가 주최하는 '트램과 대전 도시 계획' 콜로키움> 토론자로 강연에 갔었다. 특히 문화 분야 토론자였다.

문화는 공간에서 싹튼다는 말을 하였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가 처음 태동한 곳은 고대 그리스이다. 그 중심에는 각자 의견을 주장하고 토론하면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아고라라는 광장이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원형이 만들어졌다. 고대 로마에도 아고라를 본떠 만든 포럼이라는 곳이 있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토론이 이뤄진 광장이다. 프랑스의 초대 문화부 장관은 앙드레 말로이다. 그는 각 지방에 "문화의 집(Maisond de la culture)"을 만들었다. 지역 주민이 연극, 공연 등을 접할 수 있는 공공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을 자주 접하고 즐기는 공간을 가짐으로써 프랑스인의 문화적 수준은 한층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문화로 먼저 교류를 틀면, 정서적으로 친밀도가 높아져서 다른 분야의 교류로 잘 이어지게 된다. 그게 문화의 힘이다. 문화 예술은 사회통합, 나아가, 사상과 이념을 아우르는 데 긍정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화 교류를 통해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면, 차이와 이질감을 해소하는데 그것이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문화이다.  그래 문화의 두께가 두꺼워야 사회가 두터워진다.

동물이나 식물은 자신의 진보를 전적으로 진화에 의존하지만 인간은 문화에 더 의존한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문화적이라는 점이다. 문화를 글자 그대로 보면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혹은 그려서(文) 변화를 야기(化)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변화를 더 잘 야기하는 인간일수록 더 인간일 수밖에 없다. 문화는 선회(旋回)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문화는 단절이 아니라 축적이다. 인류는 이 축적이라는 거인의 어깨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숨 쉬듯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접하고, 이른바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문화은 단순한 포장지가 아니라, 핵심 내용물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잼 대전을 극복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보면, 트램은 다음과 같은 순기능이 있다. 가장 먼저, 트램은 도시와 시민을 하나로 연결하는 다양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냥 단순하게 교통 수단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소통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래 다양한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그 길은 다음과 같이 4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한다.
1. 도시 디자인 플랫폼: 도시 정체성 확보 기회
2. 움직이는 경관 플랫폼: 도시 경관을 만들어 가는 기회
3. 도시 재생 플랫폼: 쇠퇴한 지역의 공간 가능성을 회복시켜 다시 활성화시킨다. 도시 문화와 경제의 불균형 현상을 되찾는 기회
4. 도시 관광 플랫폼: 기존 관광 자원을 연계하는 역할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할 수 없지만, 치밀한 계획 수립으로 대전이라는 도시를 바꿔 나갈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보다 많이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착실하게 계획 수립을 하고 실행했으면 한다. 그렇지만 현재 트램 계획을 보면, 트램은 있고, 문화는 없는 트램이다. 문화에는 반드시 문화공간이 필요한데 지금은 노선만이 있고, 역세권은 투기 자본이 잠식했다.
1. 현재는 문화, 관광이 들어서 공간 개념이 없다. 트램 정류장, 역세권은 개발이 아니라 도시 재생으로 접근하여 지역 전통을 유지 발전하는 것을 축으로 삼아야한다.
2. 트램의 본 취지인 Wakable(걷기 좋은)도시, 걷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강력한 반 자동차 정책을 써야한다. 이것 없이는 도로에 트램이 다니는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
3. 과학의 도시 답게 역세권마다 정부출연연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어, 과학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트램과 함께 도시 정체성을 다시 만드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4. 도시 디자인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대전의 도시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파리의 맥도날드의 사례가 흥미롭다. 트램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게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트램이 나를 도시에서 멈추게 하였으면 한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말이다. 자연을 만나는 도시로 대전이 거듭났으면 한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반칠환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우리의 오래된 사고에 의하면, 자연은 서로 반대되면서 보완적인 힘들의 상호작용으로 진행되고, 식물이나 인간, 즉 생명 또한 그 두 과정에서 생겨나고 성장하다 소멸한다고 보았다. 그 두 힘의 포괄적 상징을 음양(陰陽) 또는 건곤(乾坤), 하늘과 땅이라고 생각했다.

음양은 빛과 그늘의 대조에 기원을 둔 개념이다. 건곤은 창조와 수렴의 역동에, 남녀는 구체적 성별에 포인트가 있다. 음양의 원리에서 천지가 생기고, 남녀가 수많은 생명을 산출한다. 그런 점에서 건곤은 우주적 아버지와 어머니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우주가,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중심에 있다. 주자학에서 개인 전체의, 이를테면 우주나 사회, 가족 등 공동체의 유기적 일부로서, 각자가 점하는 위치와 상황에서 적절한 역할과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한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제2장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간은 우주적 인(仁)의 보편성(理一) 안에 있다'는 말이다.  그 사랑과 배려의 마음 안에서 물(物)과 아(我)와 구분되지 않는다. 플라톤의 '에로스(eros)'가 소환된다. 사랑은 분리하는 힘이 아니라, 통합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 통합적 전체를 이일(理一)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노자처럼 무한한 혼돈(混沌)으로 나타나거나, 묵자처럼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보편적 사랑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개별자(分殊)로서, 그가 처한 혈연적 그리고 사회적 맥락 하에서 구체적이고, 상황적으로 발현된다. 이를테면 "자신의 부모를 존경하고,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보편성을 말하려면, 바로 이 구체적 감성을 개발하고, 덕성을 길러 더 널리 확장해 나가야한다. 사랑은 그러므로 차등적 성격을 갖고 있고, 또 확장되고 성숙되는 어떤 것이다.

우선 구체적 감성을 기른 후, 그걸 확장해 나가면서 성숙되는 것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다. 오늘 하루도 긴 하루였다. 마감하면서 다시 한번 <성학십도>의 제1 '태극'은 우주의 중심을 설파했는데, 제2 "서명"은 인간의 위상을 알려준다. 그 위상에 따라 오늘 하루를 인간으로 잘 살아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천지(天地)를 어버이로 태어나, 만물을  형제로 두고 있다. 가족의 서열, 군신의 위계 안에서 인간이 구현해야 할 우주적 소명은 무엇인가? 내 어버이를 모시듯 사람을 모시고, 내 자식을 보듬듯 천하의 아이들을 키우고,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인간된 자의 책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저녁이다. 이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자기 구원의 길잡이이다. 산다는 것은 그 기본을 잘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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