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술은 죽음과 부활을 체험케 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2. 10:00

8년 전 오늘 글이에요.

술은 죽음과 부활을 체험케 한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소개하고 있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제우스 대신이 곧 광명의 지배자이며 광명이듯이, 나는 곡식과 과일 그리고 이로 빚은 술의 신이자 곧 곡식과 과일 그리고 술이다. 내가 썩어 술이 되거든 너희가 마셔라. 너희가 썩어 술이 되면 내가 마시리라, 마시고 취하고 싶은 자는 취하라. 내 무리가 술의 광기에 취하고 노래의 광기에 취하여 오르페우스를 찢어 죽였다는 말을 너희가 들었느냐? 내가 그녀들에게 죄를 주지 않은 이치를 너희들이 아느냐? 취하고 싶은 자는 취하라. 취하거든 산으로 들어가라. 산에는 삼엄한 신전도 사당도 없다. (…….) 너희들의 목적은 술이 아니다. 광기도 아니다. (…….) 나는 누구인가? 바꼬스(싹)이다. 씨앗이 대지에 들었다가 제 몸을 썩히고, 싹을 내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다시 대지에 들어 제 몸을 썩히는 이치를 생각하라. 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한 알의 곡식과 과일이 있는 이치를 생각하라. 그리고 너희가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의 생명으로 곧게 설 방도를 생각하라. 그것이 목적이다. 내가 너희에게 준 술과 술자리는 쾌락이 아니라 한 자루의 칼이다. 너희는 자루를 잡겠느냐, 날을 잡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준 술은 무수한 생명이 뒤섞여 있는 카오스의 웅덩이다. 너희가 빠져 있겠느냐, 헤어 나오겠느냐?"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제1권 p. 305-307.)

술은 한 자루의 칼이다. 카오스(혼돈)의 웅덩이다. 술을 단순히 취하려는 목적으로만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술을 통해 다시 부활하라고 말한다. 술과 함께 일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아를 잊은 망아의 상태로 들어간 뒤, 그 망아(忘我)의 정점에서 우리는 생성과 소멸이 곧 하나인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우리 또한 자연의 한 씨앗임을, 한 씨앗으로 태어나 한 생을 살고 갈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러니 속세의 욕망과 고통에 얽매여 괴로워할 것도 없고, 그저 겸손히 자연의 도도한 흐름 속으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봄이 오면 나의 죽음을 딛고 또 다른 씨앗이 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마신 술로 죽었다가, 정오가 되니 조금씩 나의 온 세포가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