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최진석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2)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0. 08:39

8년 전 오늘 글이에요.

최진석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2)

철학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을 이루려는 여정에 나선다는 뜻이다.

이는 철학적 시선을 높이는 일이다. 그 철학적 시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상상력이나 창의성이 발현된다. 상상력이나 창의성이 발현되는 높이의 시선, 그것이 지성적 시선이고, 그 지성적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을 철학이라 한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선으로 보면 더 높은 지혜를 얻게 되는 일이다.

개인도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 맞는 이상(비전, 아젠다)을 설정하고, 그 이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때 지성적 능력을 발휘해서 조건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적 차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후의 목표는 건국이었다. 그 독립국가로서의 다음 목표는 물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산업화였다. 그 때의 산업화는 공업화와 도시화였다. 그 다음은 민주화였다. 사회를 주도하는 경제가 달라지면 주도하는 계급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새로운 정치적 조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민주화에 대한 욕구였다. 이젠 보이지 않는 '선진화의 벽'을 넘는 게 우리의 과제이다. 민주화 다음의 선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선진화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의 시선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단계이다. 선진화의 단계는 어렵다. 왜냐하면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선진화의 벽은 투명하다. 지성적이고 문화적인 높이로만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화로 나아가려면 썩은 틀들을 폐기 처분해야 한다. 신념화된 자기 소리만 내면 안 된다. 이젠 노자의 '무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것을 차고 앉아 거기에 머루려 하지 마라.(공성이불거) 영웅은 공을 이룬 다음에 바로 다음 공을 향해 나아가는 동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철학한다는 것은 이전의 철학자들이 남긴 체계적 이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이론이 생산될 때 사용되었던 그 높이의 시선에 함께 서보는 일이다. 단지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배우는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철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자들이 남긴 체계적 이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성적 시선으로 사유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철학자들의 사유의 높이에 도달해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다. 철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말한 탈레스가 그렇다. 그는 역사의 책임을 신에게 미루던 인간들이 이제 스스로 역사의 책임자로 등장하도록 추동한 사람이었다.

철학은 시대의 자식이다.
철학자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정해진 것들과 결별하는 독립적인 자세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철학은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일이고, 문명의 깃발이 되는 일이고, 인간에게 새 빛을 끌어 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 반복 된다.
철학적 높이에 도달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차원에서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하는 일이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해낸 결과들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철학은 현실 세계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이다. 사유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문화적인 시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이 우리에게서 생산될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 주인이 된다. 철학하는 일은 남이 이미 읽어낸 세계의 내용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을 갖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