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1)
8년 전 오늘 글이에요.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1)
지성적인 시선의 높이를 철학이라고 한다.
자신의 시선과 활동성을 철학적인 높이에서 작동시키는 것이 철학이다. 그래야 창의력과 상상력이나 윤리적 민감성이나 예술적인 영감이 가능하다. (세 가지이다.)
단순히 철학적 지식,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어느 한 사회의 높이를 가늠하려고 할 때 대개 그 사회의 문화나 예술 그리고 철학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성적 차원이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작동되는 '창의'와 '상상'의 힘을 말한다.
질문하기보다 대답을 잘하는 모범생은 사태를 그 자체의 의미로 해석하려고, 사태 속으로 꿰뚫고 들어가는 힘이 약하다. 인간 욕망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문의 흐름을 포착하는 능력을 우리는 지성 혹은 소피아라고 한다. 여기가 문화와 예술 그리고 철학이 작동하는 곳이다. 이 차원에서 세계의 흐름 혹은 세계의 진실을 관념으로 포착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패턴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꿈꿔보는 것이 '상상'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일을 '통찰'이라고 한다. 이러한 통찰은 지식의 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시선의 작동이 어느 높이에 도달하면 이루어진다.
발산하는 높이와 보는 이의 사람의 시선이 일치되어야 재미를 느끼며 즐겁다. 무엇을 즐긴다는 것은 그것이 발산하는 가치의 높이와 자신의 시선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갤러리나 박물관은 인간의 지성을 성장시키고, 또 성장된 지성의 높이를 가져야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에서 유물들의 하나하나에 시선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유물들을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동선을 본다. 그 움직임의 패턴을 우리는 문화라고 하고, 인간의 동선,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인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늬, 즉 문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함이라는 것이다. 그 탁월한 인간이 표현하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 탁월한 인간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한다. "예술이다. 아트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그것은 가장 탁월한 단계, 가장 높은 단계로 상승해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단순히 형상화의 능력을 가진 기능인이 아니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예술가의 단계에서는 아직 없는 길을 열어야 한다. 에술이란 이미 있는 길을 익숙하게 걷는 현재의 장소에서 없는 길을 새로 열면서 가는 단계이다.
피아니스트와 뮤지션과 아티스트는 다르다.
피아노 연주자, 음악가 그리고 예술가의 단계는 다르다. 발휘하는 시선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를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예술은 '술'을 알아야 한다.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