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일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19. 14:41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은 우연히 접한 글이다. 성공회 사제를 하다가 정년퇴직하고 시골에 돌아와서 텃밭과 가축을 키우고 사는 윤정현(66) 선생 이야기이다. 그에게 이러게 "외롭지는 않습니까?"라 물으니, 그 대답이 내가 꿈꾼 삶이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신념 체계를 내려놓고 살고 싶어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교리, 제도 이런 게 대부분 하나의 틀입니다. 인간은 제도 안에 있어야 보호받는다고 여기고, 안정감을 느끼죠. 대중과 있어야 편안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결국 매트릭스 안에 있는 것이죠. 삶이 게임기 안에 있으면 그 안에 갇혀 사는 셈이죠. 조종당하고 사는 겁니다. 다석 유영모를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다스리고 지배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으면 잘못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사진, 시 그리고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만나실 수 있다.

일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면서, 땀을 흘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에 나는 움찔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본다. 아니, 돌아가서는 안 된다. 돌아보자. 그 일상이 어떤 일상이었던가. 모든 부문에서 불평등이 노출되는 일상, 그 과정에서 복합위기가 가중되는 일상, 그리하여 미래가 사라지는 일상이었다. 조만간 코로나19는 퇴치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장기적, 포괄적, 심층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에게는 최소 네 가지 이상의 난제가 주어져 있다. 기후위기, 핵무기, 자원고갈, 불평등.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소쩍새 울다/이면우

저 새는 어제의 인연을 못 잊어 우는 거다
아니다, 새들은 새 만남을 위해 운다
우리 이렇게 살다가, 누구 하나 먼저 가면 잊자고
서둘러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아니다 아니다
중년 내외 두런두런 속말 주고 받던 호숫가 외딴 오두막
조팝나무 흰 등 넌지시 조선문 창호지 밝히던 밤
잊는다 소쩍 못 잊는다 소소쩍 문풍지 떨던 밤.

정말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안다는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 왜 이게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안다고 생각하면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 뿐만 아니라, 조금 어려운 글은 읽고 이해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나 문해력(文解力)이 더 떨어지고, 생각의 지평이 좁아진다.

우리는 모른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게 있어야 질문하게 된다. 또 질문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질문하길 멈춘다. 그러나 이때부터 삶의 성장도 멈춘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있다. "숙고(熟考)하지 않는 삶은 살만 한 가치가 없다." 무엇을 숙고하라는 말인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질문하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우리는 성장하는 노력, 즉 배움을 시작하게 된다.

한근태는, 자신의 책, 『고수의 질문법』에서,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 겸손: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이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안다. 그런 사람은 아는 것은 안다고 이야기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좋은 리더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사람에 대한 존중: 질문은 질문 내용 못지않게 의도가 중요하다. 순수한 의도로 질문해야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다. 이 의도가 상대에 대한 존중심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존중의 마음이 있어야 질문 할 수 있다.
- 자기 훈련: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 즉 자기 훈련이 안 된 사람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자기 훈련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윗사람일수록 인내심을 길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 하나는 다른 사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정(認定)이라는 말의 인(認)자를 파지하면, 말씀 언(言)+참을 인(忍)의 합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줄 알아야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질문을 사용하면, 조직의 자발성도 키울 수 있다.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일을 하기 보다 목표 달성을 위한 강한 의지를 갖고 다들 자기 일처처럼 일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조직의 자발성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목표 설정 과정에서, 혹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리더가 지시 대신 질문을 하는 것이다. 리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대신 조직원들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렌트한 차를 세차하는 사람은 없다. 내 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부모나 교사 등 권한을 가진 사람은 습관적으로 강요를 하지만 그 결과는 지속적이지 못하다. 강요를 당한 후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잔소리일 뿐인 경우가 많다. 왜 잔소리 하는 가? 가장 쉽고 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지시보다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잘 안 된다. 왜 그럴까?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 질문을 하면 자신의 생각을 늦추고 상대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 받는 사람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잠시 생각을 해야 한다.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질문을 함으로써 자기 의견을 접어두고 상대의 견해와 관심을 이해할 수 있다. 출발은 그 사람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사결정 과정에 그 사람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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