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으로 사는 생은 다른 사람을 도울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이롭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에는 재미난 시를 공유한다.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는 공부와 놀이 사이에서 늙어가다가 죽는다. 흥미로운 것은 죽음에 관한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질문과 한 쌍을 이룬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다시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조합하게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질문들의 조합은 관계, 앎, 우정 등으로 이어진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게 한다. 셀리 케이먼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질문을 한다. ”유일한 자원인 네 삶 속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는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바랄 수 있는 가치는 좋은 사람(to be good-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잘 하는 사람, to do good을 원한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덕적으로 사는 생은 다른 사람을 도울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이롭다.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삶은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삶이다. 무엇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정의인가?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있는 불균형이다. 세상의 풍요를 누리며 부를 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타면서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최고의 삶은 세상에 정의가 더 많이 작동하도록 기여하는 시간 속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적 자원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는 그곳, 그래서 덜 힘겹게 살도록 보살피는 그 시간에서 삶은 가치를 갖는다. 혼자만 술집에 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삶이 진짜 귀중하다는 가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삶은 우리에게 '드물게' 누릴 수 있는 자원이다. 그러나 더욱 더 다정한 언어로 채워야 하는 귀한 시간이다. 죽음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얻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멍청한 일에 기웃거리고, 세상이 주입한 생각에 휩쓸리면서 말이다.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지금 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정말로 나의 유한한 시간을 쓸 만한 일인가를 스스로 묻게 한다.
이러면, 우리는 늙어 별 볼 일 없어도 사는 여유가 생긴다. 뭐든지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난 몇 일동안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신나게 뛰는 우리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한국 축구의 전통인 '스파르타식' 훈련과 투혼의 정신력 축구에서 수평적 소통과 동기 유발,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스펙이나 화려한 배경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성장한다는 것이다.
집에 못 가다/정희성
어린 시절 나는 머리가 펄펄 끓어도 애들이 나 없이 저희끼리만 공부할까봐 결석을 못했다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 여자가 어머 저는 애들이 저만 빼놓고 재미있게 놀까봐 결석을 못했는데요 하고 깔깔댄다 늙어 별 볼일 없는 나는 요즘 그 집에 가서 자주 술을 마시는데 나 없는 사이에 친구들이 내 욕할까봐 일찍 집에도 못 간다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정희성 #와인비스트로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