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읽다 접어준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13. 09:40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19년 광화문 글 판 '여름 편'에 김남조 시인의 시구가 걸렸다. "읽다 접어준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펼치기 위해 접어 둔 책과 사랑 고백을 앞둔 기다림의 시간처럼, 희망과 설렘이 있는 삶은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오늘 아침은, 교보생명 관계자가 말 한 것처럼, 완성되지 않은 것들이 품고 있는 가능성과 희망의 가치를 다시 품고 싶다.

고갱은 타히티 섬에 가 인간 본성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지속하다 자신의 병든 몸을 끝내기 위해 자살을 준비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그림이 자살 전의 마지막 유작이다. "사진 하나"을 대신한다. 그림의 오른 쪽에 있는 직접 써 놓은 고갱 방식으로 질문을 해보자.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sommes-nous? Qui sommes-nous? Où allons-nous?)" 이건 배철현 교수의 <매일묵상>에서 얻은 정보이다.

고갱이 물었던 질문 1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고민을 하며 질문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 실제 삶에 중요해 보이지만, 우리는 이 질문과 대답은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잘 하지 않는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무대가 왜 여기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 나는 며칠 전부터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읽고 있다. 이 물음에 제1도인 「태극도」는 이렇게 답한다. 우주의 중심을 태극(太極)이라 한다. 그 중심은 그러나 무극(無極)이다. 보이지 않고,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매이지 않는다. 이 중심의 '활동(動)'으로부터 우주가 장엄하게 돌고, 온갖 생명이 태어나고, 계절과 사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왜 그런가? 난 이 말로 이해한다.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도덕경』제40장). 이 말은 "도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력, 즉 반反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뭐가 "좋은 것"인가? 그걸 누가 아는가? 나는 지금 이 난해하고, 낯설고, 오래된 '지식'으로 여행 중이다.

고갱이 물었던 질문 2: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그럭저럭 살다가 시간이 되면 흙으로 돌아는 존재가 아닌가? 누구나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것은 알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그 이유는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을 그 사람 자체로 잘 보질 못하고, 그 사람과 인위적으로 연관된, 다시 말하면 사회가 부여한 페르소나(persona, 가면)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사람이 지닌 학력, 권력, 부가 아니라, 그 사람일 뿐이다. 이 사실을 알려면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우리가 삼라만상의 의미와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기 위해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청명한 마음과 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때를 닦는 여행 중이다.

고갱이 물었던 질문 3: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죽으면 끝인가? 우리의 인생은 죽은 후에 그대로 마치는 것인가? 잘 모른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묵상과 준비는 오늘 우리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살만 하게 만든다. 역설적이다. 위의 세 질문은 해답을 원하지는 않는다. 질문은 자신의 삶을 더 숙고하는 질문을 유도할 뿐이다.

"따스한 잠자리, 고즈넉한 탁상 등/읽다가 접어 둔 책과 옛 시절의 달밤/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 까지/좋은 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아침이다.

좋은 것/김남조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비통한 이별이나
빼앗긴 보배스러움
사별한 참사람도
그 존재한 사실
소멸할 수 없다
반은 으스름 반은 햇살 고른
이상한 조명 안에
옛 가족 옛 친구 모두 함께 모였으니
죽은 이와 산 이를
따로이 가르지도 않고
하느님의 책 속
하느님의 필적으로 쓰인
가지런히 정겨운 명단 그대로
따스한 잠자리, 고즈넉한 탁상 등
읽다가 접어 둔 책과 옛 시절의 달밤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 까지
좋은 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 세상에 솟아난
모든 진심인 건
혼령이 깃들기에 그러하다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김남조 #와인비스트로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