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을 알아보는 층위를 말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11. 08:38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초연결 시대, 인간을 말하다> 특강이 벌써 다섯 번째 강의이다. 오늘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는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도 <햄릿>의 이 대사는 안다.

1601년 경에 완성한 <햄릿>은 세대를 거듭해 새롭게 해석되며 읽히고 있다. 주인공 햄릿이 아버지 왕의 유령에 의해 겪는 갈등과 복수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제기한다. 주인공 햄릿을 우리는 흔히 '주저하는 인간'으로 알고 있지만,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오히려 그는 '고뇌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고뇌(苦惱)는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것이다. 번뇌는 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운 것이다. 그럼 주저(躊躇)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을 본다. 주저는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것이다. 햄릿의 고뇌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절망과 그럼에도 현재적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용기 앞에서의 망설임이다.

그리고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 말하면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한 게 아니다. 그는 사는 것과 죽은 것 중, "어느 게 더 고귀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 가운데서 갈팡질팡했던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산다는 것은 "난폭한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다시 말해 삼촌 클로디어스 아래서 '적의 없음'을 연기하며 분노와 슬픔을 외면한 채 사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적의를 가지고 있지만 증명하지 못한 채 싸우다가 그대로 사라지고 마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 왕의 억울한 죽음을 제대로 해명하고, 클로디어스의 불의를 심판해야 하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대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이대로 죽는 것도 죽는 것이 아니다.

햄릿의 모습에서, 나는 의열단을 주도한 독립투사 김원봉이 겹쳐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잣대로 단순화, 정형화 시키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둘로 나눈다. 예컨대, 왼쪽과 오른쪽,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이렇게 말이다. 이런 '구분 짓기' 습관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러나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허투루 해선 안 된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갈 가는 자"는 사람 제대로 판단하는 '눈'을 지녀야 "노래"를 한다. 그 방법은 '사족'으로 단다.

길 가는 자의 노래/류시화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면
이름없는 풀들은 바람에 지고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를
나는 보았네
잠들면서까지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와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자를
나는 보았네
길은 또다른 길로 이어지고
집을 떠나 그 길 위에 서면
바람이 또 내게 가르쳐 주었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와
이제 막 태어나는 자
삶의 의미를 묻는 자와
모든 의미를 놓아 버린 자를
나는 보았네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류시화 #와인비스트로뱅샾62

공자가 말한 '사람 알아보는 법'을 말해 보고 싶다. 『논어』"위정'편을 보면, "그의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이 비롯된 이유를 관찰하고, 그가 편안해 하는 걸 자세히 살펴 성찰하면 어찌 그 사람됨을 감출 수 있겠는가?"란 말을 우리는 만난다. 사람을 알아보는 층위를 말한다.
- 사람의 행동엔 일정한 패턴(이를 예禮라고 말할 수 있다)이 있으며, 그걸 관찰하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그 사람이 어떨 때 무엇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살펴 생각(省察성찰)해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된다.
보는(視) 것은 관찰(觀)하는 것만 못하고, 관찰하는 것은 성찰(省察)하는 것만 못하다. 『논어』 원문은 이렇다. "시기소이(視其所以), 관기소유(觀其所由), 찰기소안(察其所安), 인언수재(人焉搜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