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노자는 자연(自然)을 알려면 땅(地)을 먼저 배우라고 말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5. 16:47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한표 생각: 인문 산책

인간은 일차적으로 땅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완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땅은 반드시 하늘의 조건에 따라 생생(生生)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땅과 하늘의 협업체계가 생명의 기본 구조(structure)이다. 땅이 현실이라면, 하늘은 이상이다. 하늘의 조건에 따라 땅의 한정성이 구체화된다. 이것을 노자는 '지법천(地法天)'이라 표현했다. "인법지(人法地)" 그 자체가 "지법천(地法天)"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늘의 이상을 보통 "덮는다(覆)"라 표현한다.

<<주역>>에서 역(易)은 "낳고 낳는 것을 일러 말한다(生生之謂易)"이로 해석된다. 그러니 인간은 이 '생생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 일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고미숙은 이를 "존재의 GPS"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먼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하늘은 텅 비어 있지만 변화무쌍하다. 그럼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낳고 또 낳을' 수 있다. 그것을 일러 하늘의 무늬, '천문(天文)'이라 한다. 그 다음, 몸을 굽혀 땅의 이치를 살펴야 한다. 땅은 조밀하고 구체적이며 견고하다. 그래서 만물을 두루 포용할 수 있다. 그것을 일러 지리(地理)라고 한다. 천문과 지리, 그 사이에서 인사(人事)가 결정된다. 천문과 지문 그리고 인사의 삼중주가 한 인간 존재가 만들어 내는 삼중주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이 '인사(人事)'를 하는 행위를 우리는 문화(文化)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문명(文明)이다. '경작(耕作)'하지 않고 문화에서 나오는 문명을 기대할 수 없다. 문화라는 단어의 어원이 잘 말해준다. 배철현 교수는 최근 자신의 <묵상>글에 다음과 같이 문화를 잘 정의했다. "‘문화’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컬쳐(culture)는 ‘땅을 개간하다, 돌보다’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콜레레(colere)의 과거 분사형인 ‘쿨투라(cultura)에서 파생되었다. 그 의미는 ‘관리된 것, 개간된 것’이란 의미다. ‘문화적인 인간’이란 자신을 관리한 사람,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은 자다. 그(녀)는 그곳에 새로운 종자의 씨를 심고, 그 씨가 발아하고 자라나고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사람들이 그 나무가 자비롭게 주는 그늘에서 쉬도록 배려한다.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심전(心田)을 갈아엎은 적이 없는 괴팍한 사람은 야만인(野蠻人)이다. 야만인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의 노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한 적이 없고, 제어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을 제어함으로 획득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에겐 무질서와 폭력이 법이다." 그 반대가 문명인이다.

끝으로 땅의 예찬을 공유한다. "땅은 겸손한 자에게 자신의 품을 연다. 땅은 모든 것을 주었으나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한다. 땅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거나 다투지 않는 부쟁(不爭)의 덕을 가르쳐준다.

땅의 주변에는 버려진 존재가 없다. 잡초도 작물도 벌레도 모두 자기 방식대로 존재한다.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는 것은 농부의 선택일 뿐이다.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는 차별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땅이다. 사랑과 증오란 이름으로 축복을 내리거나 저주를 내리지 않는다. 그저 차별하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이 땅이다.

땅은 열릴 때와 닫힐 때를 안다. 겨울에는 문을 닫아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할 시간을 준다. 그리고 봄이 되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세상을 품어준다. 생명은 오로지 땅에 기대어 한 호흡으로 존재한다. 땅의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아낌없이 자신의 살을 내주기에 밥 퍼주는 엄마, 식모(食母)라 부를 만하다.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도 그저 묵묵히 자신에게 안긴 모든 존재를 품어주는 땅은, 우리의 어머니를 닮았다.

노자는 자연(自然)을 알려면 땅(地)을 먼저 배우라고 말한다. 땅에는 하늘의 이치가 담겨 있고, 그 하늘에는 도(道)와 자연의 이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人法地·인법지), 땅은 하늘을 본받고(地法天·지법천), 하늘은 도를 본받고(天法道·천법도),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도법자연).’

‘저절로(自) 그러한(然) 것’이 자연이다.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듣는다. 세상에 어떤 일도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없다. 강요와 억지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아서 결코 오랫동안 이어질 수 없다. 우주 어느 하나 자연의 원리에 따라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없을진대 인간 역시 이런 자연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그 자연의 원리가 온전하게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땅이다."(박재희)